트럼플레이션? 환율 불확실성 고조…원·엔 각자도생

2024. 7. 3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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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입에서 시작된 엔화강세, 금리가 이끌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대 팽배한 日, 인하 믿음 공고해진 韓
엔 캐리 트레이드 속 국내주식 매도세…원화약세 요인
트럼프 당선되면 환율 불확실성 더 커져 “예측 어렵다”
달러강세 용인 않는다지만, 정책은 고물가·고금리 내포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통상 동조해왔던 원화와 엔화가 따로 움직이고 있다. 기준금리 여건 등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엔화 강세는 일본 기준금리 인상 기대와 함께 지속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리가 떨어질 것이란 믿음이 공고해지면서 환율 움직임이 제한됐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나타날 세계경제 불확실성도 환율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나타날 현상을 점치기가 힘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은 달러약세를 외치고 있지만, 대부분 정책은 강달러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환율 개입과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우려되고 있는 셈이다.

엔화 강세에도 움직이지 않는 원화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장보다 0.1원 상승한 1382.0원에 개장한 뒤 1380원대 초중반에서 등락하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에 마감한 서울 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보다 1.8원 오른 1383.7원으로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8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좁은 범위에 갇혀 있다.

반면, 엔·달러 환율은 확연한 하락세다. 이달 초순 한때 160엔 초반대까지 올랐던 엔·달러 환율은 이날 154엔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5일엔 151엔대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불과 3주만에 6% 넘게 오른 셈이다. 이후에도 등락이 있었지만 150엔대에 안착하는 모양새다.

지난 16일이 두 통화의 변곡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기 힘들다는 언급을 한 뒤 엔화는 급속도로 강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원화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통상 동조성을 나타냈던 두 통화의 흐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금리 오른다 믿는 日…떨어진다 생각하는 韓

원인은 두 나라가 처한 금리 상황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금리 인상 기대감이 현재 팽배한 상태다. 일본이 조만간 금리를 올리게 되면 미·일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엔화의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엔화 강세의 시작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이었지만, 그 흐름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금리다.

일본은행(BOJ)는 이날과 내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등을 논의한다. 지난 3월 일본은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해 2016년 2월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마무리했다. 시장에선 이번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신호가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일 금리 격차를 이용한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뒤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얻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매력을 점차 잃는 것이다. 엔화 해외 유출이 줄어들게 되니 자연스럽게 엔화 가치 상승을 끌어 올릴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 중앙은행 금리 결정을 앞두고 매파적 신호가 나올 것이란 예측이 강해지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일어났다”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자산을 팔면서 미국 기술주가 하락하고, 이에 우리나라 주식도 일부 매도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리가 오히려 떨어질 것이란 믿음이 강하다. 채권금리가 연일 하락하는 등 실제 시장금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전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4.6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978%에 마감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2%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 2022년 5월 30일(2.942%)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10년물 금리는 연 3.046%로 6.2bp 떨어졌다. 지난 26일(3.108%)에 이어 2거래일 연속 연저점을 나타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엔화 강세는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기대에 상승한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의 자금 움직임도 이에 일조했다.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 속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우리나라 주식을 매도하는 경향이 강해졌단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리스크오프 장세가 생겨나면서 국내주식을 매도하는 경향이 생겼고 이에 달러 수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앞으로도 원화와 엔화가 따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당장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대한 신호를 주지 않으면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연합]
트럼플레이션 우려 속 달러약세? 불확실성에 환율 ‘시계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환율 행방은 더 종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 강달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달리 정책 내용은 대부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달러강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은 관세 인상이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60~100%에 달하는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1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관세 인상은 직접적인 수입물가 인상 요인이다.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경로는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대규모 감세도 마찬가지다. 감세를 하게 되면 재정이 부족하게 되고 결국 국채를 더 찍어내야 한다. 금리 상방 요인이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강달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줄곧 내놓고 있다. 요약하면 금리는 내리지 않지만, 달러는 약세로 가져가겠단 것이다. 시장의 힘으론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이에 일각에선 ‘플라자 합의’와 같은 인위적 방식이 시도되지 않겠느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김정식 교수는 “시장의 힘으로 안되면 플라자 합의와 같이 강제로 개입해 환율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일본, 프랑스, 서독, 영국 재무장관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남단 5번가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환율 조정 합의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 화폐 가치를 올리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엔화 가치가 급속도로 올라가는 결과를 낳았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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