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00% 반대” 류희림의 ‘셀프 연임’...위기의 방송·통신 기구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6기 출범을 앞둔 방송통신심위원회 내 잡음이 연일 논란이다. 5기 방심위를 이끈 류희림 위원장이 기습적으로 회의를 열고 자신의 연임을 확정 지으면서다. 6기 방심위원(9명)이 위촉되기도 전에 위원장부터 선출한 것이다. 류 위원장은 발빠르게 연임을 결정한 배경으로 "심각한 민원 적체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원 사주 등의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셀프 연임'까지 한 것이어서 방심위 안팎의 비판이 상당하다.
이뿐만 아니다. 방심위와 함께 방송·통신 관련 합의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들어 5인 체제를 완성하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두 명의 방통위원장은 여러 논란과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공세에 최근 1년 사이 잇따라 기관을 떠났다. 임기(3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방송·통신 합의기구 내 파열음이 커진 모습이다.
'민원 사주' '이해충돌 소지'에도 버티는 류희림
"류희림 씨를 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악몽 같은 심의 공백을 맡기 위해 일주일 전 법과 규정에 따라 위원장 호선을 마쳤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방심위는 그의 연임을 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다. 발단은 류 위원장의 임기 종료부터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위촉된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며 5기 방심위를 이끌었다. 약 10개월간의 수행 이후 7월22일 임기가 종료됐다.
사건은 하루 뒤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23일 자신의 추천 몫으로 3명(류희림·강경필·김정수)을 6기 위원으로 위촉했는데, 류 위원장이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자신의 연임을 결정했다. 윤 대통령이 위촉한 3명과 5기 방심위원 중 임기가 남은 여당 추천 위원 2명 등 5명이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류 위원장이 6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퇴근길 강행한 '기습 선출'의 여파는 상당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는 성명에서 "5기 위원들의 임기가 모두 끝나기도 전에, 5기 위원들과 함께 6기 위원장을 호선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회의가 열린 이날 류 위원장 등의 퇴근길을 막아서며 항의 표현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역시 방심위에 방문해 힘을 보탰다.
류 위원장에 '비토'하는 방심위 내부 목소리도 드러났다. 노조가 방심위 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다. 설문에 응답한 117명의 직원 100%가 호선 절차를 '부적절했다'로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류 위원장의 연임에도 반대했다. 류 위원장이 민원 사주 등 논란을 일으킨 사실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류 위원장은 가족과 지인에게 민원을 넣도록 사주하고, 이들이 넣은 민원을 방심위에서 심의·의결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해충돌 여부를 조사해 사건을 방심위로 보내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방심위 지부는 이와 관련해 "'민원 사주'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은 해촉 사안"이라며 "여전히 경찰 수사와 권익위 조사(방심위 송부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류 위원장의 위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취지다.
류 위원장은 이에 맞섰다. 류 위원장은 7월30일 연임 이후 첫 회의에서 "직전 두 번의 위원회 출범 당시 위원 위촉 지연으로 각각 7개월, 6개월씩 무려 13개월 이상 장기 업무 공백이 이어졌다"며 "당시 각각 10만여 건, 12만 5000여 건씩 22만 건 이상의 민원이 적체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24일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12 범죄 신고와 119 화재 신고처럼 방심위 민원 심의를 멈출 수 없어 시급하게 위원장을 호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색한 '합의' 기구, 尹 출범 이후 2년째 도돌이표
그러나 6기 방심위가 구성되기도 전에 이뤄진 '셀프 연임'을 두고 파장은 크다. 방심위는 방송·통신에서의 불법·유해 정보를 심의하는 민간독립기구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온라인동영상플랫폼 유튜브 등도 방심위의 몫이다. 방심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 근거해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명, 국회의장이 여야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3명, 국회 과방위에서 3명을 추천한다. 통상적으로 집권여당(6명) 성향이 다수로 구성돼왔다. 그런데 이번엔 6기가 구성되기도 전에 위원장부터 정했다. 대통령이 위촉한 당일 전체회의를 연 사실도 논란거리다.
이런 불협화음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엿보인다. 방송·통신 정책 등과 관련해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통위는 5인의 합의제다. 대통령(2명)과 국회(3명)가 위원들을 추천하는데, 여야 비율이 3대2의 구조가 된다. 이마저도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 2023년 8월 말 국회 추천 방통위원 3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2인 체제로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5인 체제로 운영된 적도 없다.
윤 정부에서 임명된 수장의 공백도 난관이다. 지난해 12월 탄핵 표결 직전 이동관 전 위원장이 사퇴했는데, 후임자인 김홍일 전 위원장도 7월 탄핵 소추를 앞두고 스스로 직을 내려놓은 잔혹사가 반복됐다. 이 전 위원장은 특히 취임 이후 95일, 역대 최단 기간 재임한 인물로 남았다. 임기(3년)도 못 채운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법정 시한인 7월29일 불발됐다. 윤 대통령은 7월30일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며 임명 강행 의지를 내비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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