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점차 포효 세리머니→66세 노감독의 꾸짖음…“상대 자극해선 안 돼” 박상원 절제를 배우다
[OSEN=수원, 이후광 기자] 66세 노감독을 만나 절제를 배웠고, 신뢰를 얻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우완투수 박상원(30)이 김경문(66) 감독을 만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야구 인생을 펼쳐나가고 있다.
박상원은 지난 30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T 위즈와의 시즌 13차전에 구원 등판해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 25구 호투로 팀의 6-4 승리 및 4연승을 이끌었다. 6월 25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 이후 약 한 달 만에 시즌 5번째 홀드도 수확했다.
박상원은 6-4로 앞선 6회말 2사 2루 위기에서 선발 하이메 바리아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앞서 바리아가 배정대 상대 추격의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흐름이 KT 쪽으로 넘어간 상황이었지만, 박상원은 첫 타자 황재균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고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7회말에는 위기관리능력을 선보였다. 대타 문상철을 사구, 강백호를 1루수 키를 넘기는 2루타로 내보내며 2사 2, 3루 위기에 몰린 박상원. 이번에는 3번타자 김상수를 2루수 땅볼로 잡고 실점하지 않았다.
귀중한 아웃카운트 4개를 책임진 박상원은 8회말 한승혁과 교체되며 기분 좋게 경기를 마쳤다. 투구수는 25개. 김경문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 등판한 박상원이 추가 실점 없이 1⅓이닝을 잘 막아줬다”라고 박상원을 수훈선수로 꼽았다.
그러나 박상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취재진과 만나 “솔직히 오늘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다. 좋은 피칭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팀이 이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라며 “감독님께서 끝까지 믿어주시고 또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동안 힘든 상황이 많았고, 공도 많이 던져서 선수들 전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지난주 3일 휴식 이후 계속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라고 겸손한 승리 소감을 전했다.
박상원의 이날 투구에 유독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그가 이전 수원 시리즈에서 발생한 벤치클리어링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6월 5일 두 팀의 시즌 8번째 맞대결이었다. 한화는 12-2로 앞선 9회말 2사 1루에서 투수 장시환이 KT 천성호 상대 2루수 땅볼을 유도하며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이후 평소와 같이 양 팀 선수단이 그라운드로 나왔고, 팬들을 향한 인사와 함께 경기가 종료되는 듯 했지만 마운드 근처에서 돌연 격한 신경전이 전개됐다.
발단은 KT 베테랑 3루수 황재균이었다. 그라운드로 나와 한화 선수단 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부르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고, KT 윌리엄 쿠에바스, 한화 장민재가 황재균을 말리면서 벤치클리어링이 발발했다. 동시에 KT 장성우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누군가를 계속 주시하며 분노를 표출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박상원이었다.
박상원은 12-2로 크게 앞선 8회말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김상수와 멜 로하스 주니어를 연달아 삼진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격한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출하며 상대를 자극했다. 김상수의 헛스윙 삼진 때 마치 택견을 하듯 오른발을 한 번 크게 들어 올린 뒤 박수를 세게 쳤고, 로하스를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에는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호우 세리머니’를 연상케 하는 포효 세리머니를 했다.
KT 벤치는 박상원의 세리머니에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등 부상으로 벤치를 지키던 장성우가 특히 그랬다. 이에 류현진이 KT 벤치를 향해 사과의 뜻을 전하는 장면이 포착됐고, 한화 박승민 투수코치도 8회말 종료 후 KT 벤치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한화 내부에서도 박상원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해 주장 채은성, 류현진 등 베테랑 선수들이 주의를 줬다.
그럼에도 KT 황재균, 장성우는 경기 후 박상원을 따로 부르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물론 박상원 또한 화난 표정으로 KT 선수들을 째려보면서 더그아웃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벤치클리어링은 양 팀 감독 및 베테랑 선수들의 중재로 마무리됐고, 박상원은 이튿날 KT 더그아웃을 찾아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박상원이 만난 첫 타자가 황재균이었다. 공을 던질 때 이를 의식했냐는 질문에 박상원은 “벤치클리어링 자체가 팀에게 안 좋고, 바라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좋은 게 아니다. 또 황재균 선배가 나보다 선배이기 때문에 내가 100% 잘못한 것이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경기할 때 내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 타자가 누구든 내 투구를 하려고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답했다.
벤치클리어링 당시 김경문 감독은 “야구는 하면서 배워야 할 건 배워야 한다. 오늘 경기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내가 더 가르치도록 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던 터. 실제로 어떤 가르침을 받았을까.
박상원은 “당시 잘못해서 혼났다. 내가 하면 안 되는 것이 있고, 상대방이 자극 안 되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션도 있을 텐데 어쨌든 나도 모르게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다”라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전했다.
박상원은 인터뷰를 통해 김경문 감독을 향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그는 “솔직히 올해 시즌을 잘 치르고 있지 않은데 감독님이 날 계속 기용해주시고, 내보내주신다. 나한테는 나가는 매 경기가 너무 소중하다”라며 “2군 내려가서 잠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감독님이 믿고 내보내주시는 것 때문에 마운드에서 내 모습을 그나마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거 같다”라고 진심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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