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승리’에 고무되지 말 것, 더 강한 ‘극우’가 온다
좌파의 승리인가, 가까스로 지킨 ‘상식의 마지노선’인가. 최근 프랑스와 영국에서 열린 조기 총선 결과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표면적인 선거 결과만 놓고 볼 땐 ‘좌파의 승리’처럼 읽힌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총 650석 가운데 412석을 획득하며 정권을 거머쥐었다. 프랑스에서는 결선투표 끝에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총 577석 중 182석을 얻어 원내 1당을 확정 지었다.
앞선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극우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지만, 곧이어 열린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은 좌파 정당·연대가 반격한 셈이 되었다. 이는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참고자료로 인용되고 있다. 7월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대표직 연임에 출사표를 던지는 기자회견에서 “영국은 1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프랑스도 좌파 연대가 총선에서 승리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에서 좌파 정당이 거둔 승리가 온전히 자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나라 모두 기성 좌파 정당이 높은 득표율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두 나라가 처한 정치적·경제적 사정이 다르고 정치제도도 다르지만, 두 국가 모두 유럽 정치 전반에서 꿈틀대고 있는 ‘극우 정당 약진’의 영향을 받았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반으로, 영·프 두 나라의 선거 결과에 담긴 이면과 그 파장을 살펴봤다.
영·프 조기 총선은 앞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에서 실시한 유럽의회 선거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6월6일부터 6월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경 우파의 급부상’이다. 7월18일 기준, 유럽의회 정치 그룹 가운데 극우 성향을 보이는 그룹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유럽의회는 선거 후에도 이합집산이 가능해 정치 그룹별 의석수가 선거 직후와 달라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주도하는 ‘유럽 보수와 개혁(ECR)’이 78석,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합세한 ‘유럽을 위한 애국자(PfE)’가 84석,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주축이 된 ‘주권국가의 유럽(ESN)’이 25석을 확보했다. 유럽의회 전체 의석은 720석인데, 이 가운데 총 187석이 극우 성향을 가진 정치 그룹의 몫이 되었다. 유럽의회 1당은 188석을 확보한 중도우파 그룹 ‘유럽국민당(EPP)’이 차지했지만,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쪽은 극우 정치 그룹들이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한 국민연합과 독일에서 사민당(SPD)을 몰아내고 득표율 2위를 한 독일을 위한 대안의 선전에 정치적 후폭풍이 뒤따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회 결과가 나온 6월9일 곧바로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조기 총선이라는 과격한 카드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합의 득표율 1위 뉴스를 희석시키기 위해서라는 평가부터,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프랑스 선거제도 특성상 국민연합이 다수당이 되긴 어렵기 때문에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극우 정당의 돌풍을 잠재우려 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동기야 어쨌든,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수’는 일정 부분 통했다. 시작은 불안했다. 6월30일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RN)은 득표율 33.2%로 1위를 차지했다. 이대로라면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프랑스 의회에서 극우 정당이 원내 1당이 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501석에 대한 결선투표를 앞두고, 현 집권 여당인 중도파(앙상블)와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프랑스 전역 200여 개 선거구에서 적극적인 후보 단일화에 나서며 결과를 뒤집었다.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 후보가 1위를 기록한 선거구에서도 결선투표에서 ‘단일화 후보’가 역전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지역구 한 곳을 예를 들어보자. ‘센에마른(Seine-et-Marne)’ 2선거구가 좋은 예시가 된다.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 후보는 35%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중도파 후보는 33.73%, 좌파 연합 후보는 23.7%를 획득했다. 총 9명 후보 가운데, 결국 이 3명이 결선투표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반(反)극우 연합’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 결선투표에서 좌파 연합 후보가 사퇴하면서 극우 정당 후보(국민연합) 대 중도파 후보 간의 1대 1 구도가 만들어졌고, 결국 결선투표에서 60%대 40%로 ‘반극우 연합’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극우 대항 전선’이 좌파 연합과 집권 여당인 중도파 사이에 형성되면서 극우 국민연합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결국 유럽의회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은 총 143석, 원내 3당 확보에 만족해야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파는 168석으로 원내 2당에 머물렀지만, 유럽의회에서 일어난 ‘극우의 부상’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런던의 강남’은 왜 노동당 선택했을까
반대로 영국에서는 ‘단일화 없는 선거’ 때문에 300년 전통의 보수당이 몰락에 가까운 패배를 맛봐야 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은 어부지리로 얻은 의석이 많았다. 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획득한 득표율은 33.7% 수준인데, 막상 노동당이 확보한 의석은 412석으로 전체 의석의 63.4%에 달한다. 반대로 집권 여당이던 보수당은 총득표율 23.7%를 기록했지만, 의석수는 121석에 그쳤다. 전체 의석 대비 18.6% 수준이다.
노동당이 상대적으로 적은 득표율로도 총선에서 압승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집권 보수당에 대한 영국 유권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둘째, 영국 특유의 소선거구제 배경에서 여러 정당으로 표가 분산됐다.
이 중에서도 영국의 극우 정당으로 손꼽히는 ‘영국개혁당(Reform UK)’의 존재감이 지역구 곳곳에서 보수당의 발목을 잡았다. 과거 ‘브렉시트당’으로 불린 영국개혁당은 득표율(14.3%)만 놓고 보면 세 번째로 표를 많이 얻은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영국개혁당 역시 의석 기준으로는 5석 확보에 그치며 지역 기반 소선거구제의 쓴맛을 경험해야 했다. 반면 지역별로 ‘선택과 집중’에 나선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은 12.2% 득표율만으로도 72석을 확보하며 이번 선거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수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극우부터 중도 성향까지 표가 분산되면서 정치 지형이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보수당이 그동안 철옹성처럼 지키던 선거구가 노동당으로 넘어가는 일도 생겨났다. 대표 지역이 이른바 ‘런던의 강남’으로 잘 알려진 ‘첼시&풀럼’ 지역이다. 런던의 대표적 부촌인 이곳은 2010년 분구된 이래로 줄곧 보수당 소속 그레그 핸즈 의원이 선거에서 승리해왔다. 리시 수낵 내각에서 무역정책장관을 지낸 핸즈 장관은 안정적인 선거구를 기반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득표율 39.1%에 그치며, 득표율 39.4%를 기록한 노동당 벤 콜먼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흥미로운 건 이 지역에서 영국개혁당 후보가 6.7%나 표를 가져갔다는 점이다. 결국 보수당 표심의 분화는 산발적으로 ‘노동당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됐다. 영국 전역에서 첼시&풀럼 지역과 같은 선거 결과가 잇따르면서, 보수당의 의석은 372석에서 251석이나 줄어들었다.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어 있다”
승리 과정에서 양 국가의 좌파 정당이 취했던 전략은 다소 차이가 있다. 영국 노동당을 이끈 키어 스타머 총리는 과거 제러미 코빈 대표 시절과 달리 상대적으로 중도 지향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노동당 공약 재검토 과정에서 대학 등록금 폐지와 에너지·수도 회사 국유화 공약을 포기하면서 당내 강경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런 지향성이 선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다소 미지수다. 이번 영국 조기 총선은 노동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보수당의 거듭된 실정에 따른 ‘정권교체 바람’이 좀 더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 10월 영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11.1%를 기록하며 실질임금 하락을 겪었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보건의료 인프라의 문제도 보수당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반면 프랑스에서 좌파 연합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반(反)국민연합(RN)’ 구호에 집중한 덕이 크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파와 좌파 연합 간의 정책적 이견이 상당했지만, 결국 결선투표에서 국민연합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반극우’ 유권자들의 절박함이 통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좌파 연합(182석), 중도파(168석), 극우 국민연합(143석)의 의석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번 선거를 두고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인 알랭 뒤아멜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어 있다.” 분열된 정파 구조 사이에서 정치적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좌파 연합과 중도파의 연대는 극우 정당의 ‘1당 등극’은 막았으나, 원내 진입까지 막지는 못했다. 극우 정당이 의회 안에서 적잖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영국은 노동당 단독 의석 확보를 바탕으로 한동안 안정적인 정부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당 정부는 공약 이행과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과제에 당면해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당내에서 ‘현실론’을 앞세우며 재정적자를 부르는 공약을 대폭 수정한 채 집권했다. 그러나 양극화되는 정치 환경 속에서 ‘상대적 중도 노선’이 적절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지지 기반이 쉽게 와해된다는 사실을, 옆 나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노동당이 청년층,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에서 오히려 득표율이 떨어지는 점에 주목한다. 영국 〈가디언〉은 7월7일 보도에서 “녹색당이 2위를 차지한 40개 선거구는 모두 노동당이 의석을 얻은 지역에서 나왔다”라며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의 분화를 지적했다. 이 보도는 영국 노동당이 이번 선거를 통해 획득한 ‘과한 의석’은 보수당이 조금만 지지율을 획득해도 금세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등장한 ‘좌파의 승리’ 역시 단단한 지지 기반 위에 세운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
취약한 기반 위에서 획득한 ‘좌파의 승리’는 한편으로 ‘온건 우파의 붕괴’를 의미한다. 영국 보수당은 브렉시트 이후 경제와 복지 전 영역에서 실패의 기록을 경험했고, 프랑스는 중도우파 성향인 공화당(LR)의 몰락을 맛봤다. 사르코지 정부 시절 집권 세력이었던 공화당은 이번 조기 총선에서 에리크 시오티 대표가 ‘극우와의 연대’를 시도했다가 당내 반발을 사며 혼란에 빠졌고, 결국 46석 확보에 그치고 말았다. 영국과 프랑스 국내 정치에서 중도 보수의 자리가 좁아진 대신 극단주의의 영역이 점차 커지는 중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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