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떠난 지 20년, 〈정영음〉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였다
안테나를 뽑아 올려 라디오를 듣던 때가 있었다. 미지의 목소리가 그 가느다란 쇠기둥을 따라 흘러 내 안에 고이던 밤. 때론 피뢰침이었다. 섬광처럼 빛나는 말과 음악이 안테나를 타고 내려와 외로운 청춘을 감전시켰다. 누군가에겐 전영혁이, 누군가에겐 신해철이, 또 누군가에겐 이소라와 정지영이 밤의 섬광이었다. 그 가운데 정은임도 있었다.
1992년 가을, MBC 입사 4개월 차 신입 아나운서가 맡은 심야 프로그램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일명 〈정은임의 영화음악〉, 이하 〈정영음〉)은 단숨에 20세기 시네필의 아지트가 되었고, 매일 밤 그와 함께 영화 꿈을 꾸던 젊은 영화광들이 21세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던 스무 살 류승완에게 “〈저수지의 개들〉 같은 영화도 있다는 걸 처음 가르쳐준” 최고의 영화학교. 영화를 만들었지만 알릴 방법이 없어 답답했던 독립영화 감독 변영주에겐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준 고마운 우리 편”.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해줄지” 알 수 없던 대학생 김태용이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이상한 영화, 나도 좋아해’라고 계속 속삭이는 〈정영음〉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가족의 탄생〉처럼 정말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김태용이 되었다거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연출한 김초희 감독이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서 몰래 듣던 〈정영음〉이 아니었다면 영화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일 같은 게 실제로 일어났다.
하지만 1995년 봄, 볼 수 없던 영화를 미치도록 보고 싶게 만든 프로그램이 막을 내린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언젠가 해보고 싶게 만든 디제이는 전설로 남는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울먹이는 마지막 멘트가 담긴 카세트테이프가 마치 레지스탕스의 암호문처럼 시네필 사이에 은밀하게 퍼져나간다.
“복귀라면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건데,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2003년 10월의 어느 날 정은임은 내게 말했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잡지 〈필름2.0〉의 기자가 되어 “복귀를 앞둔 전설의 디제이”를 인터뷰할 때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모두들 군대 가 있는 어느 선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뭐, 완전히 신화적 인물이더라고요. 짱돌의 달인에, 강철 같은 사상에…. 근데 제가 4학년 때 그 선배가 복학하는데 아, 그 신화가 산산이 깨졌다는 거 아닙니까. 모든 신화의 속성이란 다 그런 거예요(정은임).”
걱정과 달리 〈정영음〉의 신화가 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가는 정은임이었다. 한진중공업 전 노조위원장 고 김주익 열사 이야기로 그가 직접 쓴 2003년 10월22일의 오프닝이 그 신화의 첫 페이지였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정말 외로운 사람들 앞에서 쉽게 외로움을 투정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가을을 지나, 뜨내기 청취자로 드문드문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맞이한 이듬해 봄. 〈정영음〉이 또 끝나버렸다. 이번엔 6개월 만이었다. 마지막 방송에서 그는 다시 울먹였다. 영화 시사회 같은 곳에서라도 마주치면 어떤 말로 편들어주는 게 좋을까, 혼자 생각해보는 사이 여름이 왔다.
다시 만난 정은임은 웃고 있었다. 영정 사진 안에서. 꽃에 둘러싸인 채로. 서른다섯 살. 너무 이른 작별에 모두가 말을 잃은 빈소엔, 누가 틀어놓았는지 알 수 없는 〈시네마 천국〉의 음악이 나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없어도 영화는 좋아했을 테지만 그가 있어서 영화가 더 좋아졌습니다. 그가 보여준 영화도 사랑했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더 사랑했습니다. ‘인생은 네가 본 영화랑 달라. 인생이… 훨씬 힘들어.’ 언젠가 이렇게 말해주던 사람. 영화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게 만든 그는, 세상이, 전부 영화는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시네마 천국〉 이야깁니다. 〈시네마 천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매일 밤, 녹음 버튼을 눌렀던 한 사람
지난 7월7일, 〈정영음〉을 사랑했던 청취자 200여 명이 모인 공개방송의 오프닝을 나는 이렇게 썼다. 정은임과 함께했던 매일 밤이 ‘나의 시네마 천국’이었다고 믿는 사람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안테나를 뽑아 올려 라디오 듣던 밤’을 추억했다.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버틴 하루’의 끝에서 매일 밤 나를 기다려주던 디제이에게 같이 고마워했다.
대부분 중년에 접어든 청취자들 사이에 20대 방청객이 적지 않았다. 1999년생, 2001년생, 2003년생…. 어떻게 “내가 놀이방에 다닐 때쯤 방송된 프로그램의 뒤늦은 애청자”가 된 걸까. 팟캐스트? 방송이 나가고 나면 그 릴테이프를 재활용하던 1990년대, 대부분의 자료가 유실된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과 달리 〈정영음〉만 거의 모든 회차가 올라와 있는 이유는 그럼 뭘까.
아버지. 매일 밤 딸의 방송이 시작될 때 잊지 않고 녹음 버튼을 누른 정은임 아나운서의 아버지. 그리고 당신의 소중한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받아 일일이 파일로 변환해 올려놓은 숨은 애청자. 그날 그 자리에 모두 와 있었다. 두 사람 덕분에, 20년 전 떠난 디제이를 20년 동안 한번도 떠나보낸 적 없는 사람들이 온 힘 다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8월2일 저녁 6시부터 두 시간, 그리고 같은 날 밤 11시부터 한 시간. 다큐멘터리와 공개방송, 그리고 AI 기술로 복원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새로운 〈정영음〉까지, 총 세 시간 동안 MBC FM4U에서 방송될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여름날의 재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가수 정우의 노래에 기대는 날이 많았다.
“가까운 데서 당신을 잃어도 봤구요/ 아주 먼 데서 안아도 봤어요(‘뭐든 될 수 있을 거야’ 중).” 이 노랫말을 특히 자주 흥얼거렸다. 가까운 데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잃었다고 느끼는 날, 아주 먼 데서 나를 안아주던 존재. 정은임이었다. 〈정영음〉이었다. 라디오였다.
“모든 사람은 섬이다. 하지만,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군도의 일부분이다. 수면 아래에서 그 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특집이 되길 소망한다. 당신도 군도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줄 썰물이 8월2일 오후 6시에 시작된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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