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기업은 글로벌 플레이어… 성장 과실은 결국 나라로 돌아와” [세계초대석]
노란봉투법 등 한쪽의 목소리만 반영
경영 활동 위협 법안·규제 늘어 아쉬움
문제 해결 ‘규제 만능주의’ 방식에 우려
첨단산업 경쟁 국가대항전이란 인식을
저출산·고령화 심각… 비상대책 나와야
지역 기업에 법인세 차등 방안 등 필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플레이어입니다. 하지만 아직 기업에 대한 국내 인식이나 지원은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2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쉽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박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세계와 경쟁한다는 사실을 바탕에 두고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대기업·중소기업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며 “기업 성장의 과실(果實)은 결국 우리나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뛸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박 부회장에게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규제 만능주의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방식과 내용은 문제다. 기업 활동과 투자가 위축될 것이다. 외국기업도 다른 나라에 없는 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데 한쪽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반영돼 진행됐다. 앞서 여러 차례 경제단체가 우려 목소리를 냈음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답답하다.”
―윤석열정부는 규제 완화를 표방했다. 체감되나.
“규제가 만들어질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회적 큰일이 일어났거나, 제도에 구멍이 있어 보완하기 위해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재검토되고 바뀌어야 하는데 기존에 있는 규제는 그대로 있고 새로운 규제만 계속 생긴다. 지난 21대 국회 때 규제 완화 관련 법안 중 처리되지 못한 것이 많다. 22대 국회 들어서 새로 많은 법안이 발의되는데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 꽤 많다. 전체적으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규제 완화를 위해 필요한 일은.
“최근에는 정부가 규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의원입법도 많다. 법안 발의할 때 예산추계자료를 붙이게 돼 있는데, 규제 관련해서도 규제영향평가 같은 것을 하면 좋겠다. 이 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규제가 생기는 게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외부 전문가 등 제3의 기관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민할 때가 됐다. 정부나 국회나 취지는 공감할 것이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고민을 더 해야 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위상이 낮아졌고, 인공지능(AI) 주도권도 못 잡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가.
“첨단산업은 국가대항전이다.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에 공장 짓고 일자리 만들라고 한다. 우리도 국가대항전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기업이냐 아니냐, 재벌이냐 아니냐 구분한다. 기업은 글로벌 플레이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와 경쟁한다. 인식의 틀을 깨야 한다.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나라가 많다. 그 나라도 세금을 쓰는 것이지만 목적은 분명하다. 공장이 돌아가고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거기서 나오는 과실이 다시 세금 기반이 되고, 수많은 생태계에 전달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29년 정도 지났다. 그동안 국제규범을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다. 우리 살길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우리는 대기업 프레임에 갇혀 보조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먼저 해결해보려 한다. 해결되면 좋은데 해결이 안 돼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면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기업들에도 리스크이자 도전일 것이다.
“당장 인력이 문제다. 기업뿐 아니라 농사, 어업, 조선, 건설, 지방의 아르바이트까지 외국인 없이는 안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로봇 도입에 따른 기술지원 등이 필요하다. 외국인 인력의 경우 정보기술(IT) 등 첨단분야 인재를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라고 언급할 정도다. ‘뭣이 중한데’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국가비상사태만큼 중요한 것이 있나. 이에 맞는 비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관련해 정년연장 논의가 나온다.
“정년퇴직 나이지만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분이 많다. 이들을 활용하면 인력 부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년연장 논의는 반드시 급여체계 개편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임금은 연공서열에 따라 이뤄진다. 고령자가 계속 일하면서 고임금을 가져가면 비용 때문에 청년 고용이 어려워진다. 노조가 정년연장은 찬성하지만, 임금 조정은 협의가 잘 안 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당장 연장되는 근로자는 이득이지만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상의는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법인세 지역 차등화 등 방안을 제안했다.
“지역상의 회장,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역에 기업이 없으니 일자리가 없어 젊은 사람이 떠나고, 인력이 없으니 기업이 떠나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다. 기업이 지역으로 가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이전을 결심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는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에 대한 법인세 차등화다. 수도권 공장 팔고 그대로 지역 투자하는 경우 양도소득세를 깎아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악용될 수도 있지만 지방 투자가 활성화된다면 생각하기 나름일 수 있다.”
“기업이 내려가려면 몇 가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세제는 지역으로 내려가겠다는 기업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집과 학교, 문화생활을 걱정한다. 이 부분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주택 지원과 좋은 학교 유치·유지 등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이 필요하다.”
―대한상의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출범 2년2개월이 됐다. 어떤 활동을 했나.
“기업 활동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는데,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기업이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시대다. 기업이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신기업가정신이다. ERT는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는데, 여러 기업이 같은 주제로 모여 활동하면 더 큰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하며 출발했다. 2년간 150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지원의 빈틈을 찾아 보완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호 ERT 활동은 현대차와 효성의 소방관 복지지원 회복지원버스였다. 소방관이 현장에서 화재진압 중간에 쉴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버스다. LG와 두산은 취약계층의 가족간병과 돌봄을 지원한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국민호감인식 조사에서 점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모래성’이 되지 않도록 대한상의가 장려하려고 한다.”
―한·중·일, 한·베트남 등 민간 경제협력 추진이 활발하다. 우리 경제에 가지는 의미는.
“우리 기업과 나라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어디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공급망 확보가 중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특정 국가에 에너지를 의존할 경우의 부작용을 교훈으로 배웠다. 협력의 국가나 내용이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에서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에 취임한 지 100일이 조금 지났다. 앞으로의 각오는.
“차관 때와 비슷하게 일정이 정말 많다. 3개월이 1년은 된 것 같다. 대한상의는 기업 목소리를 모아 정부와 국회에 전하는 게 의무다. 오랜 공직생활로 공무원의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기업 목소리를 전하면 공무원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고려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역지사지’할 수 있는 자리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돕겠다.”
●1964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콜로라도대 경제학 석사 ●행정고시 31회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산업국장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한국동서발전 대표이사 사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2024년 4월∼)
대담=나기천 산업부장, 정리=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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