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스로드]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누리호 참여기업 불만 터졌다(상)

박정연 기자 2024. 7. 31.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년 5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3차 발사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이 우주발사체 기술 보유국 지위를 갖게 한 ‘누리호(KSLV-Ⅱ)’ 개발 참여 기업들이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 사업을 앞두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개발한 누리호와 달리 체계종합기업으로 불리는 민간 기업이 개발사업을 총지휘하는 체제로 전환되면서 체계종합을 수행하는 기업과 협력업체 간 갈등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체계종합기업이 발사체 부품 단가 책정이나 사업 수행자 선정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민간이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로 전환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 최우선 과제는 ‘단가 낮추기’?

30일 우주항공 산업계에 따르면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참여 기업에 대한 계약에 착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발사체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선정을 주관한다. 

누리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은 2032년까지 총사업비 2조132억 4000만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중 체계종합기업 선정 예산은 9505억원이다. 많은 누리호 협력업체들이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며 선정을 위한 준비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물론 변수는 있다. 차세대 발사체의 성능과 제원이 2032년 발사 예정인 달 착륙선을 쏘아올리는 데 부족하고 재사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우주항공청이 차세대 발사체 엔진 제원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성능과 제원과는 별도로 우주항공 업계에선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이 앞선 사업보다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둘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누리호 고도화 사업 등 다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방침을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차세대 발사체 참여기업 선정 공모를 포기하는 협력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우주항공 소재·부품 기업 관계자는 "차세대 발사체 사업이 예상하고 있는 단가 수준을 듣고 하반기 사업자 공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현재 언급되는 납품 단가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중소기업 입장에선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참여해야 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또 다른 우주항공 소재·부품 기업 관계자는 "우리 업체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에 새롭게 진출한 대기업은 벌써부터 절반 수준의 단가를 제시하고 있어 회사 차원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투자가 매우 어려운데 실제 선정 경쟁에서 단가가 핵심 기준이 되면 선정 과정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세대 발사체 참여 사업자 선정 작업이 아직 시작되진 않았지만 누리호 반복발사를 위한 '누리호 고도화 사업' 등 우주항공 기업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구체적인 단가 수준이 언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발사체 개발 사업이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세계 발사체 시장 경쟁에 발을 들이려면 발사 비용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사용 발사체 개발도 발사 비용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면서도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던 협력업체들이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앞서 누리호 발사 사업에서 확보한 협력업체들의 기술력을 활용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게 될 수도 있는 데다 어렵게 확보한 기술력이 사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우주항공산업에서 발사성공 이력은 기술력을 담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검증된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차세대 발사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연구자로서 매우 아쉬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차세대 발사체 핵심기술, 체계종합기업이 가져갈까 두려워”

체계종합기업에 부여된 참여기업 선정권은 발사체 관련 독점기술을 보유한 협력업체들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체계종합기업이 기존 협력업체가 독점기술을 가진 분야에 대한 사업 수행기업으로 '셀프' 선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사체 기술에 사활을 걸고 10년 넘게 인력과 장비를 투자한 기업들은 행여나 사업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누리호 고도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일부 기업에게 보유한 기술의 자세한 사항을 정리해 제출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기술의 안전성 평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핵심 노하우를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누리호 개발 참여기업들은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을 통해 체계종합기업이 모든 ‘포트폴리오’를 가져가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발사체에 필요한 다양한 부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부터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체계종합기업이 확보하면 결국 그 성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돌아가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해외 수출이 필수적인 우주산업에선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하다”며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IP)과는 별개로, 부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 일부를 제공하는 것에서 역할이 그치면 기업 입장에선 아무런 자산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발사체 참여사업자 선정 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협력업체들의 불안감이 조성되는 이유는 체계종합기업과 협력업체 간 소통의 기회가 부족한 탓으로 분석된다. 한 우주항공 분야 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5월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한 이후 다음 발사체 사업 준비에 착수하려 했지만 당시 정부는 체계종합기업 선정 이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했고, 체계종합기업이 선정된 이후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공장의 절반이 발사체 관련 설비인데 누리호 3차 발사 프로젝트 이후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던 협력업체들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생태계 확장 차원에서 우주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신규 업체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라며 "참여 기업들의 적정 이윤은 보장하면서 경쟁력 있는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기술력 높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제는 예산 거버넌스"…항우연 "발사대 구축, 시험설비 개량 등 필수예산 집행할 뿐"

전문가들은 이같은 갈등의 원인으로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의 예산 구조를 지목했다. 이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때 책정된 하드웨어 예산 중 절반만이 체계종합기업에 넘어가면서 기업이 더욱 비용 절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월 공개된 '2022년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업은 총예산 2조132억원에 하드웨어 개발비 1조6770억원, 경상경비 및 사업추진비 3362억원으로 기획됐다. 하드웨어 개발비는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 구축 비용이며 경상경비와 사업추진비에는 인건비, 연구활동비 등이 포함된다.

협력업체들이 참여하는 하드웨어 개발을 위해 체계종합기업에 넘어온 예산은 9505억원이다. 하드웨어 개발에 배정된 예산 중 56%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집행한다. 항우연 관계자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 중 항우연에 넘어온 예산은 나로우주센터 발사대 구축 비용과 시험설비 개량비용 등 필수적인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우주비행체 추진기관 전문가인 김정수 부경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체계종합기업도 물론 이러한 예산 구조에 대해 사전에 인지를 했겠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는 협력업체들과 하드웨어 개발을 도맡는 기업에 예산이 다소 적게 분배된 것 같다"며 "체계종합기업과 협력업체 간 갈등의 발단은 한쪽에 만족스럽지 않은 예산 거버넌스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