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제품 중심' 석화사, 中공세에 휘청…"고부가 제품으로 재편 시급"
올해 5월까지 對중국 수출비중 36.3%
2017년 50% 넘던 비중 40%대 무너져
中자급률 향상으로 비중 더 줄어들 듯
설비 매각 등 잇단 개편 시도도 불발
[성동원 해외경제연구소 산업경제팀 선임연구원,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구조를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위주로 하루빨리 재편하지 않으면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진 배경에는 글로벌 석유화학산업 지형의 변화가 자리한다. 석유화학은 반도체와 함께 대표적인 사이클(호황과 불황의 주기적 변화) 산업으로 꼽히는데, 범용제품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이 생산국으로 변모하며 제품을 팔 시장이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어서다.
급속도로 줄어드는 中 시장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우리나라가 중국에 판매한 석유화학제품 수출규모는 702만톤(t)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4% 소폭 감소한 수준이지만 코로나19 이전 평균 수출량에 비하면 크게 모자란 규모다. 실제로 올 상반기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 세계 석유화학제품 수출량 중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6.1%로 나타났다.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17년 한때 50%를 넘기도 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수출량이 감소하며 올해 40%대마저 무너졌다.
LG화학, 롯데케미칼,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대형 석유화합업체들은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제품을 생산하며 이익을 내왔다. 경기가 좋아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늘어나 호황이 찾아오면 곳간을 두둑이 채워뒀다가 불황을 견디는 식의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이클 경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중국이라는 거대 수요시장이 버텨줬던 덕분이다.
문제는 중국이 2020년대 들어 NCC(나프타 분해시설)를 비롯해 에틸렌, PP와 같은 기초유분과 파라자일렌(PX) 등 중간원료에 공격적인 증설을 실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유분 확보 수준을 대폭 상향하고 설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기초유분 자급률이 100%를 초과한 상태라, 기초유분부터 합성수지까지 중국 내 화학제품 수직계열화가 완성되면 앞으로 우리나라 화학제품의 대중국 수출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 “버티면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중국은 원가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기업들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절대적인 생산량이 많이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한편, 러시아 등 무역 제재를 받는 산유국으로부터 할인된 가격에 원유를 대거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원유는 전년 대비 24.1% 늘어난 사상 최대규모인 1억702만t으로 집계됐다. 중국의 전체 원유 수입량(5억6399만t) 가운데 러시아의 비율도 19.0%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스페셜티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자회사 롯데정밀화학은 셀룰로스를 조미료와 가정간편식(HMR)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셀룰로스란 주로 식물에서 발견되는 식이섬유로, 인체에 무해해 의약용 캡슐 코팅이나 식품 질감을 향상시키는 첨가제로 주로 쓰인다. 전 세계에서 이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는 미국의 IFF사와 일본의 일본의 시네쯔사 두 곳 정도다. 아직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에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DL케미칼 역시 이 같은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인수한 미국 석유화학업체 크레이튼과 손잡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중이다. 크레이튼이 만드는 톨유지방산(TOFA) 등 바이오 화학제품을 기반으로 접착제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루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지난 2010년대부터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자급률 확대 정책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나, 국내 업체들은 단기 호황을 맞아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설비를 확장하는 반대 전략을 취해왔다.
특히 정유업체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최근 몇 년 새 석유화학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며 공급과잉 우려를 더했다. 에쓰오일이 9조2580억원을 투자해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복합단지를 구축하는 ‘샤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 크래커를 설치해 연간 에틸렌 180만t을 뽑아내는 게 골자다. 이외에 GS칼텍스는 이미 2022년 말 2조7000억원을 투자한 올레핀(연간 75만t) 생산시설을 준공했고 현대오일뱅크도 같은 해 3조원을 들여 연간 에틸렌 85만t, 프로필렌 5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HPC(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 공장을 만들었다.
LG화학, 롯데케미칼과 같은 국내 석유화학 공룡들은 설비 매각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사업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매각 작업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을 두고 현재 일부 지분 매각 후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생산 등 비핵심 사업을 하는 파키스탄 자회사 매각계약을 체결했으나 결국 매각이 불발됐으며, 현재는 말레이시아 대규모 석유화학제품 생산기지인 LC타이탄 매각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훈기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는 사업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범용제품 설비를 매각하고 스페셜티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는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이 상승하며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이 같은 어려움이 앞으로 몇 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2~3년 안에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진 (ji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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