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깨진 유리창, 코리아 디스카운트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사회심리학적 접근이 있다. 손상된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해당 건물의 황폐화가 빨라진다는 내용이다. 건물이든 집이든 유리창이 깨져있는데도 그대로 둔다는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다.

국내주식시장의 저평가를 나타내는 수식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빗대어 설명해 볼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건 분단된 국가와 4강 외교로 표현되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다. 강력하고 개선이 쉽지 않은, 사실상 '디폴트'에 가까운 상황인 건 맞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이유 하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 국내 기업들의 부실한 펀더멘탈(기초체력)과 무분별한 분할 상장, 부실한 감시 체계, 이에 반해 너무나 엄격해 기업의 유연성마저 해치는 조세제도 등 다양한 환경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러온 복합적 원인이라는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보다 기업 경영에 독점적 영향을 미치는 대주주 위주 경영 환경이 거론된다. 어쩌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첫 흠집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대주주 혹은 오너 중심 경영이 집약적이고 가파른 우리경제 특유의 성장을 이끌어 낸 것도 사실이다. 앞만보고 달리다 보니 깨지고 흠집이나도 그냥 넘어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 자본시장의 자화상이었던 셈이다.

다소 늦었지만, 완전히 늦어버리진 않은 시기에 정부가 증시부양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건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흠집을 세련되게 고쳐보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해외시장에 비해 느리다고는해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과 구체적인 정책 발표에 힘입어 우리 증시 역시 완만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우리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29일까지 국내 주식시장 전체에서 25조원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배가 넘는 수준이다. 흠집을 제거하고 시장가치를 높여보겠다는 우리 정부의 약속에 큰손들도 반응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공은 기업들에게 넘어갔다. 스스로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결정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권의 주가 흐름은 여러 상장사가 참고할만하다.

이들은 지난주 주주가치제고에 방점을 둔 밸류업 공시를 내놨다. 내놓은 밸류업 공시가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무거웠던 주가가 52주 신고가를 경신한 건 덤이었다.

흠집이 나 있는 국내 시장을 하루아침에 복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저평가된 우리 시장을 방관만 할 수도 없다. 정부 뿐만 아니라 시장 구성원 모두의 꾸준한 노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세관 기자 sone@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