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빅5, 4차병원으로 승격 검토... 중환자만 집중 치료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전국 상급 종합병원(대형 병원) 47곳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빅5′를 중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 4차 병원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빅5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1차(의원)·2차(병원·종합병원)·3차(상급 종합병원)로 짜인 국내 의료 체계의 틀을 바꾸는 것이어서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의료개혁특위에서 상급 종합병원 구조 개혁안 중 하나로 논의 중”이라며 “다양한 상급 종합병원 구조 개혁안을 8월 말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개혁특위 관계자는 “빅5를 4차 병원으로 승격해 3차 병원이 의뢰한 중환자만 치료하고 동시에 중증 질환 연구를 하는 중환자 전용 치료·연구 병원으로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의료계에선 “이제는 빅5를 전문의, 중환자 중심 병원으로 바꿔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한 전공의 1만여 명은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귀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감기나 두드러기 등 경증 환자가 빅5로 몰려 암과 심·뇌혈관 질환 등을 앓는 중환자 치료가 줄줄이 연기되는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빅5의 한 외과 교수는 “지금의 의료 파행 속에서 중환자 치료 기능을 높이려면 빅5의 4차 병원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 경우 그동안 빅5가 비(非)중증 환자 진료로 얻은 수익을 정부가 보전해 줘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보전 금액은 한 해 3조원 이상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역 병원들이 “빅5에만 정부 지원을 몰아주는 정책”이라며 반발할 수 있다. 현재 중증 환자 비율이 낮은 빅5의 비필수 진료과는 인력이 줄어드는 ‘구조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빅5의 ‘4차 병원 승격’은 지금까지 의료계에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사안이다. 정부는 그때마다 ‘4차 병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꺼내 들지는 못했다. 병원 간 복잡한 이해관계와 막대한 비용 문제 등 난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의료개혁특위가 이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대형 병원의 수술·입원이 반 토막 난 초유 상황에서, 중증·응급 환자 치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4차 병원 신설’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개혁특위엔 외부 전문가와 기재부·교육부·법무부·행안부·복지부 장관 등 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①경증 환자 쏠림 방지
빅5를 4차 병원으로 만들 경우, 고질적 문제인 경증 환자 쏠림이 크게 완화될 수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빅5 환자 중 60%가 중증이고, 40% 정도는 비중증이다. 의료개혁특위 관계자는 “빅5가 다른 대형 병원(3차 병원)이 의뢰하는 중환자 위주로 진료·수술을 한다면 의료 파행 중이어도 중환자 치료 기능은 높아질 것”이라며 “비중증 환자의 빅5 진입은 어려워진다”고 했다.
②안정적 중환자 병원 구축
빅5를 4차 병원으로 만들면 환자 수는 줄어들게 된다. 덩달아 높은 전공의 의존율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현재 빅5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은 40% 이상이다. 미국·일본 등에 비해 네 배가량 높다. 정부 관계자는 “의대 증원 등 민감한 정부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 파업을 주도했고, 그때마다 빅5의 중환자 치료는 큰 차질을 빚었다”고 했다. 전공의 비율을 10% 수준으로 줄여 빅5를 흔들리지 않는 중환자 전담 기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4차 병원 승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③지역 의료 고사 방지
빅5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낮은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체제에서 환자를 최대한 많이 보는 박리다매식 진료로 생존해 왔다. 결과적으로 지방의 환자들을 빨아들였고, 지역 의료 붕괴의 원흉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빅5에서 치료를 받은 암 환자 중 39%(103만명)는 비수도권 거주 환자였다. 빅5 쏠림은 가속화하고 있다. 빅5의 비수도권 환자는 2022년 71만명으로 10년 만에 40%가량 급증했다.
그 결과 각 지역의 중환자 치료를 책임지는 지방 거점 국립대 병원 10곳의 2022년 의료 이익은 2018년에 비해 평균 209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빅5는 평균 204억원 증가했다. 충남대병원의 한 교수는 “빅5 쏠림을 더 방치하면 각 지방 거점 병원들의 중환자 진료·수술 기능은 몇 년 안에 망가질 것”이라고 했다.
④연 3조원 이상 필요
결국 관건은 돈이라는 지적이다. 2022년 기준, 빅5의 한 해 평균 의료 수익은 병원당 1조6300억원이다. 빅5를 중환자 전용 병원으로 만들면, 매년 이들이 비중증 환자 진료로 거둔 수익을 정부가 보전해 줘야 한다. 빅5 전체에 매년 3조2000억원 정도를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환자가 줄어들면 병원의 의료 수익 외에도 주차·식당 매출 등도 줄어 정부가 보전해야 할 금액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돈을 건보 재정만으로 충당하긴 어렵다. 건보 재정은 가만히 둬도 2028년이면 27조원 규모의 적립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의료 개혁’에 드는 돈을 의료 발전 관련 예산 및 기금 신설을 통해서도 조달한다는 입장이다.
☞1·2·3차 병원
1차 병원은 경증 환자의 외래 진료를 보는 동네 의원, 보건소 등이다. 2차 병원은 병원(30병상 이상)·종합병원(100병상 이상) 등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돌본다. 3차 병원은 종합병원 중에서도 중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이다. ‘상급 종합병원’이라고도 부르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3년마다 지정한다. 진료 과목을 20가지 이상 운영해야 하고, 과목별로 전문의도 있어야 한다. 전공의 수련도 담당한다. 1차에서 3차로 갈수록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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