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의 귀농직설] 외국인 농업노동 현장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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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제주의 감귤 밭은 구슬땀 범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 연구결과를 보면 답답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웃 마을 표선리에서는 얼마 전 외국인 근로자 네댓명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박사는 '이민 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한 독일 사례를 들어 "외국인 근로자 수급을 광역정부에 맡기자"고 과감한 변화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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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인력 없이는 엄두 못내
합법적인 경로로 구인 어려워
농가 불법체류자 고용 불가피
일반 산업 위주 취업제도 한계
농업·농촌 특수성 반영 개선을
한여름 제주의 감귤 밭은 구슬땀 범벅이다. 한라봉이 더 굵기 전에 하나하나 줄로 묶어줘야 한다. ‘천혜향’이나 ‘레드향’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가지가 꺾어지지 않고 수확 때까지 열매를 지탱할 수 있다.
며칠 전 이웃 위미리 마을의 지인 농장을 찾았다. 마을 아주머니 여럿이 한라봉 달아매기에 한창이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의 불청객이 말을 붙이자, 돌아온 반응이 뜻밖이었다. “중국 사람 아니우꽝.” “나는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수다.” 옆에 있던 지인은 “외국인 일꾼이 워낙 많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우리 가시리 마을 안씨는 새벽과 저녁에 자동차를 몰고 왕복 2시간 걸리는 제주시를 왔다 갔다 한다. 시내의 인력 중개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오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시지 않고는 한라봉 줄매기도, 몇달 뒤의 수확작업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외국 인력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더 고약한 문제는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열이면 아홉이 미등록 상태의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다. 마을 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 마을은 돼지고기 맛집이 유명하다. 오랜만에 식당에 들렀더니 주인 부부 얼굴이 울상이었다. “얼마 전 단속반이 들이닥쳐 일하던 아이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모두 잡아갔다. 1년 사이 두번째고, 이번에 범칙금만 1000만원 넘게 냈다.”
식당 문을 닫을 수 없으니 급하게 구인 광고를 뿌렸다. 합법적인 경로로 외국인 근로자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중삼중의 규제 벽이 높아 작은 시골 식당이 그런 기회를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력 중개인을 통해 미등록 외국인 3명을 우선 채용했다. 달리 선택지가 없다고, 또 단속이 들어오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고 부부는 한숨을 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 연구결과를 보면 답답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물 재배농가 402곳 중 258곳(64.2%)에서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데,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하는 농가가 무려 91%에 이르고 있다. 거꾸로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자제를 이용해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한 농가는 조사 대상 258곳의 2.3%, 고작 6곳에 그쳤다.
이웃 마을 표선리에서는 얼마 전 외국인 근로자 네댓명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브로커를 통해 미등록 외국인들을 데려온 뒤 열악한 숙식 조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 단속도 만연하다. 단속이 능사일 수 없다보니 알면서도 눈감아주다가 신고가 들어오면 잡아들이는 식이다.
농촌 현실에 둔감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일반 산업 위주로 만들어진 외국인 취업제도는 농업부문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농사를 지어보면 그때그때 일당 주고 쓸 수 있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동시에 여러 해 일할 수 있는 장기 인력 수요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일당 주고 쓰는 외국 인력은 모두 불법이고 장기 인력을 데려올 수 있는 문턱은 비현실적으로 높다.
엄진영 농경연 박사는 “기존의 외국인 장기취업제도를 농업부문에 적합하게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박사는 ‘이민 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한 독일 사례를 들어 “외국인 근로자 수급을 광역정부에 맡기자”고 과감한 변화를 주문한다.
김현대 농사저널리스트·전 한겨레신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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