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이스라엘 군대 닮은 스타트업 육성업체 스낵의 박주호 대표
패기와 아이디어로 220개 스타트업 지원해 60% 이상 투자 유치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등 적대적인 국가들에 둘러싸이면서 처음부터 전쟁 위기에 놓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지원한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이 전쟁이 터질까 봐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금지하면서 변변한 군대조차 갖출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이스라엘은 독특한 군대를 만들었다. 육해공 3군을 하나로 통합하고 30, 40대 젊은이들을 지휘관에 임명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국가들의 경험과 노련함 대신 신생국가로서 위기를 타개할 패기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택한 것이다. 그 결과 32세 전투기 조종사 단 톨코브스키, 36세 수중폭파대원 요하이 벤눈 등이 공군사령관과 해군사령관을 맡으면서 다른 나라와 달리 다목적 전투기, 미사일 고속정 등을 도입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수차례 이어진 전쟁에서 승리했다.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중에서도 이스라엘 군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곳이 있다. 스타트업 네트워킹 앤드 액셀러레이팅 클럽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곳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영리 육성업체(액셀러레이터)다. 이들은 단어 앞 글자를 따서 스낵(SNAAC)이라고 부른다. 모든 직원이 서울대 재학생들로만 구성된 스낵의 무기는 이스라엘 군대처럼 패기와 아이디어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박주호(23) 스낵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스타트업에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무기
학생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한 스낵은 2022년 스타트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됐다. "초기 스타트업이 처음 벤처투자사(VC)를 만날 때까지 9개월 정도 걸려요. 그때까지 객관적 검증을 받을 기회가 없어 시행착오를 겪죠. 이를 줄여주는 것이 스낵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과연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학생들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시간이 많아요. 일반 액셀러레이터와 달리 담당한 스타트업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심층적인 고민을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스낵의 가장 큰 장점이죠. 그만큼 충실한 전략적 제언과 분석 보고서로 실력을 증명하려고 해요."
전체 직원은 11명이며 각자 하나 이상의 스타트업 또는 예비 창업팀을 맡아 지원 활동을 한다. "각자 학부 전공을 살려 전담 분야를 나눴어요. 전기전자공학부 전공자가 로봇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식이죠."
경영진은 기수제를 선택해 1년 단위로 바뀐다. 현 기수와 다음 기수의 활동 기간이 6개월 동안 겹치도록 해서 업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박 대표는 4기 대표다. "대표는 지원이나 추천을 받고 경쟁자가 있으면 투표로 선출해요."
구성원은 매년 1, 7월 두 차례 선발한다. "선배나 지인이 추천한 사람을 대상으로 전체가 참여하는 면접을 거쳐 다수결로 선발해요. 면접 과정에서 열정과 스타트업 근무 경험이나 전문 지식 등을 봐요. 일하면서 학생이 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어 지원자가 많아요."
합격하면 커뮤니티, 프로그램, 브랜딩, 태스크포스팀 등 4개 부서에 배치된다. 커뮤니티팀은 창업자들을 투자자들에게 연결해 주는 등 인맥 확보를 지원한다. 프로그램팀은 '낵스트 스텝(NaaCst STEP)'이라는 육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브랜딩팀은 스낵을 외부에 알리는 활동을 한다. 태스크포스팀은 신사업을 발굴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험하는 곳이다.
선정 경쟁률 12대 1...도전적 스타트업 선호
스낵의 지원을 받으려면 서울대 출신이 설립한 스타트업 가운데 투자를 받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투자를 한 번이라도 받은 스타트업은 VC에서 도움을 줘요. 따라서 이런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스타트업이 대상이죠."
지원 대상으로 서울대 출신이 설립한 스타트업만 고집하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외부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서울대 출신 창업가를 지원하는 것도 아직은 벅차서 외부로 확장할 능력이 부족해요. 나중에 역량이 되면 외부로 확장해야죠."
지원 대상을 고르는 방식도 독특하다. 6개월 단위로 공고를 내서 세 번의 심사를 거쳐 6개 창업팀을 뽑는다. 서류와 면접, 창업자 발표 등 3차 심사까지 끝나면 만장일치 의견이 나올 때까지 구성원이 모두 참여해 밤새 무제한 토론을 벌인다. "각자 중요하게 보는 것들이 달라요. 이런 점들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끝없이 토론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지원 대상이 될 수 없어요."
구성원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보는 것은 잠재력이다. 특히 도전적인 스타트업을 좋아한다. "안정적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선호해요. 쉽게 망할 수도 있지만 10팀 중 하나만 성공해도 사회를 바꿀 수 있죠."
올해 상반기 경쟁률은 무려 12대 1로 치열했다. 높은 경쟁률은 스낵의 인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올해 72개팀이 지원했어요. 이런 기회를 갖기 힘들다 보니 인기가 많죠."
220개 스타트업 지원, 60% 투자 유치
스낵의 지원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디마이닝과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적 교류 등 크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스타트업이 하려는 사업에 전략적 위험 요소가 있는지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답을 찾아요. 또 선배 창업가나 투자심사역을 연결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죠. 이를 위해 프라이머사제, 두나무앤파트너스, DSC인베스트먼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뮤렉스파트너스, CJ인베스트먼트, GS리테일 등 7개 VC들과 제휴를 맺었어요."
핵심은 낵스트 스텝이라는 프로그램이다. "3개월에 걸쳐 스타트업의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제휴를 맺은 7개 VC를 주축으로 투자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낵스트 스텝 프로그램의 골자죠."
필요하면 발로 뛰며 산업 현장을 찾아간다. "모종을 만드는 스타트업 시드케이가 육모장과 사업 협력을 맺을 때 스낵 담당자가 강원도의 대형 육모장을 돌아다니며 연결해줬어요."
이들의 성과는 수치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지원한 스타트업이 220개이며 이 가운데 60% 기업이 투자를 받았다. "기업간거래(B2B)에 필요한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달파가 VC에서 12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또 게임 관련 스타트업 옵티마이저AI는 우리의 도움으로 미국의 에이식스틴즈에서 15억 원의 종잣돈(시드머니)을 투자받았어요. 시드 투자 규모가 평균 3억~4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많이 받았죠."
그렇다 보니 낵스트 스텝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지분 요구 등 스낵이 대가를 원하지 않는 점을 가장 높게 평가해요. 프로그램 기간도 3개월이어서 6개월에 이르는 다른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보다 시간을 덜 빼앗긴다는 의견도 많아요."
단 비영리법인이어서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대신 상금을 지원한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낵스트 스텝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 가운데 우수 발표 기업 2팀을 뽑아 연간 5,000만 원의 상금을 줘요. 상금은 7개 제휴 VC들에서 지원받죠."
스낵의 구성원들은 모두 월급 없이 열정으로 일한다. 그만큼 구성원들의 인내와 희생이 필요하다. "스낵 활동을 하다 보면 개인 생활이 없어요.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길게 활동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활동 기간을 1년으로 정했어요. 좋은 경험을 쌓는 것을 보상으로 생각하죠."
까다로운 액셀러레이터 설립 요건, 다시 검토해야
자유전공학부에서 경영학과 에너지자원공학을 전공으로 택한 박 대표는 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회사에서 일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 투자 관련 책들이 많아서 어릴 때 이런 책을 읽었어요. 기업의 사업 활동이 세상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 고교 시절 사업가로 진로를 정했죠."
그는 2022년 줄기세포로 화상치료용 반창고를 만드는 스타트업 큐라스템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국내 최대 창업 경진대회인 K-스타트업 왕중왕전에서 수상까지 했으나 제품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워싱턴줄기세포연구원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했지만 임상 시험이 너무 오래 걸리고 돈이 많이 들어 포기했죠. 이후 미국 폐기물 처리 스타트업 이큐브랩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일했어요."
앞으로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투자 일을 할 생각인 그는 스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발견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이 스낵 같은 액셀러레이터를 만들겠다고 찾아왔을 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 힘든 일이어서 말렸어요."
특히 그는 액셀러레이터가 되기 위한 제도적 절차와 요건이 너무 까다로운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액셀러레이터가 되려면 자본금 5,000만 원 이상, 기업인수합병 경험이 있거나 투자업계에서 5년 이상 활동 경력 등이 필요해요. VC보다 초기 스타트업을 잘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액셀러레이터인데 제도적 장벽이 너무 높아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에요. 이런 조건 때문에 스낵도 액셀러레이터 자격증이 없어요. 자격증이 없다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격증을 갖추면 관공서 등과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죠. 좋은 액셀러레이터가 많이 나와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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