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의대생 지역·필수의료 떠받칠까...지방 의사들 "낙수효과는 기대 마라"

송주용 2024. 7. 3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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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K의료: ②의대 증원 정책 보완 포인트]
지방 의대 나와서 환자 몰리는 수도권으로
사명감에 지역·필수의료 지키는 의사는 소수
지역 수가 차등화 필요하지만 문제는 재원
편집자주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지난 15일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병원에서 만난 김혜민 산부인과 교수는 의대 증원에도 지역·필수의료 의사가 늘어나기는 힘든 구조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를 하다 지역 산부인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구=임은재 인턴기자

서울대병원에서 1년간 전임의를 하다 올해 3월 고향으로 돌아온 김혜민(34)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진료교수는 지역·필수의료의 위기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소송 위험이 크고 심각한 저출생이 맞물린 산부인과는 대표적인 기피 과목이지만 그래도 서울대병원에서는 전공의가 연차별로 10명 정도는 됐다. 반면 복귀한 경북대병원은 고작 한두 명에 아예 전공의가 없는 연차도 있었다. 해야 할 총업무량은 같아도 의사가 적으니 한 명이 감당할 몫은 그만큼 많다. 김 교수는 "서울에 있을 때는 번아웃(burnout·심신이 지친 상태)도 훨씬 덜했다"고 말했다.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동기 100명 중 지금까지 지역에 남아 있는 이들도 30명이 안 된다. 다들 서울의 5대 상급종합병원(빅5 병원)이나 전공 과목에 맞춰 수도권의 2차 병원으로 떠났다. 십분 이해한다. 환자가 몰리니 의사도 따라갈 수밖에. 자신 역시 그랬지만 서울대병원을 뒤로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경북대병원으로 다시 온 이유는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나까지 빠지니 경북대병원 산부인과 맥이 끊기게 생겼더라. 의사로서 지역 산부인과가 이렇게 소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늘어난 의사가 지역·필수의료에 남아야 의료 개혁인데

칠곡경북대병원 산부인과 성원준 교수가 지난 15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김혜민 교수와 함께 서울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 의사 공백을 지역 의사들이 메우는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둘은 사제지간이다. 대구=임은재 인턴기자

지난 15일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에도 지역의 필수의료, 특히 산부인과 중에서도 산과(産科) 의사가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구 감소로 출생 자체가 줄었는데 제왕절개는 수가가 낮아 할수록 손해니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굳이 키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산과는 소송 한번 당하면 배상액이 워낙 크니까 후배들한테 권해도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고개를 젓는다"며 "의대생이 늘어난다고 여기 오려는 이들이 얼마나 생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연고가 있어도 서울로 올라가는 마당에 연고가 없는 의사라면 더욱 지역에 남기가 쉽지 않다"면서 "큰 수술은 혼자서 불가능해 협진이 필수적이지만 다들 수도권으로 빠지니 지역 의료는 구멍이 생긴다"고 했다.

김 교수의 스승인 같은 병원 성원준 산부인과 교수도 의료체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의대 증원이 지역·필수의료 의사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정책적으로 의사를 늘린들 개인의 적성, 진로, 가치관 등을 무시하고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강제할 수 없어서다. 이날 성 교수는 경북대병원의 연도별 전공의(인턴·레지던트) 현황을 불쑥 내밀었다.

경북대병원은 본원과 칠곡병원을 합쳐 올해 인턴 정원 91명 중 81명을 채웠다. 2024학년도까지 경북대 의대 정원은 110명이라 졸업생도 같은 숫자인데, 81명 가운데 경북대 출신은 61명이다. 레지던트는 두 병원 정원 98명 중 77명을 뽑았고, 그중 경북대 출신은 50명이다. 경북대 의대생 110명 중 레지던트까지 남아 있는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인턴 때 한 번, 레지던트 때 또 한 번 우르르 지역을 떠났다. 성 교수는 "제자들이 찾아간 다른 수련병원들은 거의 100% 수도권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필수의료 구멍 지역 의사가 메우는 악순환

서울 '빅5 병원' 출신 지역별 전공의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지방 의대 출신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는 전국적인 필수의료 몰락과 연결돼 있다.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의료 행위의 대가)에도 사람을 살린다는 필수의료 의사의 자긍심과 보람은 고된 업무와 소송 위험에 잠식된 지 오래다. 수도권 의대 출신들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회피하니 그 빈자리를 지역 의사들이 올라가 채우고, 지역·필수의료 공백은 심화되는 악순환이 누적돼 왔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때 이종성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빅5 병원 전공의 현황도 이런 현실의 방증이다. 지난해 6월 기준 빅5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55명 중 102명(66%), 산부인과 전공의 170명 중 106명(62%)이 지역 의대 출신이었다. 서울의 수련병원 전체를 따져도 산부인과 전공의 304명 중 192명(63%)은 지역 의대를 졸업했다. 반대로 선호 과목인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전공의는 서울 의대 졸업생이 지역 의대 출신보다 2, 3배 많았다. 성 교수는 "지역의료 붕괴, 필수의료 붕괴는 각각 떼어 놔도 큰 문제지만 둘을 합친 '지역·필수의료 붕괴'는 정말 심각하다"면서 "2030년까지 수도권에 6,600여 병상이 더 생긴다면 지역 의대 출신들이 또 자리를 채울 테고, 지역·필수의료 공동화는 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직 갈 길 먼 지역·필수의료 의사 정주 대책

지역·필수의료 의사 확충 방안. 그래픽=강준구 기자

의대 증원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역·필수의료 의사 확충이다. 27년 만에 늘린 의대 정원 중 82%를 비수도권에 집중 배정한 것도 그래서다. 지역 의대 졸업생이 계속 지역을 떠난다면 의대 증원 자체가 무의미한 만큼 정부는 올해 2월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맞춤형 지역 수가 확대와 '지역필수의사제' 등을 담았다. 야권에서 추진하는 공공의대가 사관학교처럼 10년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것과 달리 지역필수의사제는 학생-대학-지자체 간 계약 기반이다. 학비와 정주 환경, 의대 교수 기회 등을 제공받는 의대생은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

아직은 대책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의료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김유일 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론적으로야 좋아도 그보다 먼저 시작한 계약 기반 공공임상교수의 경우 광주·전남은 채용률이 0%이고, 입원전담전문의는 상시 채용을 해도 충원이 안 된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면 낙수효과로 사명감이 강한 의사들이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짚었다.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는 의대생의 지역 정주 방안은 정부와 지자체뿐 아니라 의료계에도 고민거리지만 당장 딱 부러지는 대책이 나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명확한 목표 설정과 세밀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성 교수는 "지역 수가를 확실하게 차등해 지역에 남아야 이익인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내과학교실 명예교수는 "필수의료 정책의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의료비는 한정된 파이라는 게 문제"라며 "국립암센터처럼 국립순환기센터, 국립심장병원 같은 전문 의료시설을 지방에 분산해 세우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의사들이 지역에 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대구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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