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800억 있지만 당장 못써”… 금감원 “1조원 이상 유동성 문제”
具, 해결안 없이 “기회 달라” 반복
與野 “의도적 책임회피 행위” 질타
尹 “철저하게 법에 따라 조치해야”
큐텐 대표, 사태 발생 22일만에 등장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팔짱을 낀 채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구 대표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8일 위메프 미정산 사태가 처음 발생한 이후 22일 만이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에 출석하면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 대표는 사태 해결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취지의 답변만 반복했다.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전날 티몬·위메프의 기업회생절차 신청 사실과 이날 구 대표의 답변을 놓고 “의도적인 책임 회피 행위”라며 질타를 쏟아냈다.
구 대표는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고객, 판매자,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모든 비판과 책임, 추궁,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판매 대금이 어디 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는 “확인하지 않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무위에서 “티몬·위메프에 1조 원 이상의 건전성·유동성 이슈가 있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이와 관련해 “큐텐그룹 내에서 최대 800억 원을 동원할 수 있지만 정산금으로 바로 쓸 수는 없다. (자금이 있는) 중국에 여러 규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필요 자금의 10%도 그룹에 남아 있지 않은데 그마저도 언제 동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철저하게 법에 따라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부가 시장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시장에서 반칙하는 행위를 강력히 분리하고 격리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대통령실 정혜전 대변인이 전했다.
법원은 또 티몬과 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하루 만에 두 회사의 자산 등에 대한 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를 명령했다. 다음 달 2일에는 기업회생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 심문기일이 열린다.
구영배 “6개월만 기회 달라”에 금감원장 “양치기 소년 같아 신뢰못해”
[티몬-위메프 사태]
국회 정무위 현안질의
큐텐 800억, 대금 반환 턱없이 부족… AK몰 등 자회사로 위기 확산 가능성
“마진 10%인데 35% 추가 할인쿠폰”… 입점업체, 위험 고의은폐 의혹 제기
● 자기 재산 규모도 답하지 못한 구영배
구영배 큐텐 대표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우리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 원”이라며 “바로 이 부분(티몬·위메프 정산)으로 투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이라고 말했다. 구 대표는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회사에 투입하겠다”며 “2주 동안 (지분을) 담보로 해서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라며 사재 출연 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활용 가능한 재산 규모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3년도 아니고 한 6개월만 기회를 주신다면 죽기로 매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큐텐이 2월 2300억 원을 주고 인수한 북미·유럽 기반 전자상거래 플랫폼 위시의 인수 과정에서 티몬·위메프의 정산대금 일부가 활용된 사실을 인정했다. 구 대표는 “(위시를) 2300억 원으로 인수했지만 현금으로 들어간 자금은 400억 원”이라며 “(티몬·위메프 판매대금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한 달 내 상환했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큐텐 자금 추적 과정에서 드러난 강한 불법 흔적이 있다”며 “주말이 지나기 전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해 놓은 상태이고 주요 대상자에 대한 출국 금지 등 강력한 조치를 요청했다”고 했다. 구 대표에 대해서는 “가급적 선의를 신뢰해야겠지만, 최근 저희와의 관계상에서 보여준 행동이나 언행을 볼 때 ‘양치기 소년’ 같은 행태들이 있다”며 “말에 대한 신뢰를 못 해 지난주부터 자금 추적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 위기 확산 가능성…티몬·위메프는 은폐 의혹
이날 질의에서 구 대표는 “인터파크나 AK몰은 정산 못 하거나 지연 사태 가능성이 없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의 질의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티몬과 위메프 관련 피해도 메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쇼핑몰들까지 추가로 미정산 이슈가 발생하면 이커머스 전반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의원들은 티몬과 위메프가 고의적으로 사태를 악화해 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자금 경색으로 판매대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입점 업체들과 계약을 유지하고 물품 판매를 계속해 왔다”며 “의도된 사기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수습하겠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고의 부도, 폰지 사기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티몬·위메프 입점 업체들은 올해 상반기(1∼6월) 두 플랫폼의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계획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티몬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판매했던 박모 씨는 “거래 마진이 10%인데 최대 35%까지 추가 쿠폰 할인을 유도해 매출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생활용품 판매자 김모 씨도 “유동성을 끌어오기 위해 이상하다 싶은 정도로 무리한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 같다”고 했다.
직원들이 떠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메프 본사 사무실에서는 유동성 위기를 예감한 듯한 메모가 다수 발견됐다. 일부 피해자에 따르면 ‘23일 회의’라고 적힌 메모에서는 ‘회생절차 밟을 예정’ ‘8월 초 희망퇴직 예정’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추정컨대 기업회생 신청이 23일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사안이었다는 뜻이다. 사태 초기인 9일 회의 때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직원 메모에도 외부에 설명한 ‘시스템 오류’가 아닌 자금 부족 문제였음을 드러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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