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임종훈 혼복 銅… 탁구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
혼합복식 신유빈·임종훈이 12년 만에 한국 탁구에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세계 랭킹 3위인 신·임 조는 30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홍콩의 웡춘팅-두호이켐 조(4위)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39분 만에 세트 스코어 4대0(11-5 11-7 11-7 14-12)으로 완승했다.
앞서 16강에서 까다로운 상대로 꼽힌 독일 조를 4대0으로 완파하고 8강에선 세계 랭킹 8위 루마니아 조를 4대0으로 제압하면서 승승장구했으나 4강에서 남자 단식 1위 왕추친과 여자 단식 1위 쑨잉사가 한 팀을 이룬 중국 조를 맞이해 2대4로 아깝게 졌다. 두 세트를 빼앗으며 선전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이날 동메달을 확정하자 둘은 서로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득점이 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쪽 팔을 들고 환호하면서 서로를 북돋웠다. 결성 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합작했다. 한국 탁구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유승민(현 대한탁구협회장)과 주세혁(현 남자 대표팀 감독), 오상은(현 미래에셋 감독)이 나선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나온 첫 메달이다. 올림픽 탁구는 2004년 대회 이후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을 치르지 않고 있고, 혼합 복식은 2020 도쿄 대회부터 열리고 있다. 복식으로만 따지면 신-임 조 메달은 2004년 여자 복식 이은실-석은미 조 은메달 이후 20년 만이었다.
신유빈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금메달에 이어 올림픽 혼합 복식 시상대까지 서면서 ‘탁구 신동’에서 ‘복식 천재’로 진화하고 있다. 복식은 파트너 동선을 예측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뛰어난 탁구 지능과 순발력을 요구하는데 신유빈은 안정적인 커트와 드라이브 등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완성된 복식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
‘삐약이’ 신유빈(20)은 외모와 달리 독한 승부 근성을 지녔다. 초교 3학년 때 대학 선수를 꺾는 등 ‘탁구 신동’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고 최연소 국가대표(2019년 만 14세 11개월)와 올림픽 탁구 최연소 출전(2021년 도쿄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쉴 새 없이 경기와 훈련을 이어간 탓에 2021년 오른손 부상 피로 골절로 핀을 박고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1년여 재활 끝에 돌아온 그는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전지희와 함께 여자 복식 정상에 섰다. 한국 여자 탁구가 중국 독식을 깨고 21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캐낸 금맥이었다.
영광은 잠시, 또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지난 2월 부산 세계선수권에서 홈 팬들 기대와 달리 노메달에 그친 것. 그래도 그는 묵묵히 파리 올림픽을 준비했다. 지난 5월부터 랭킹 포인트를 확보하기 위해 브라질과 슬로베니아, 나이지리아, 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연이어 출전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그의 곁엔 복식 파트너 임종훈(27) 선배가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왼손잡이 셰이크핸더 임종훈은 선수 생활 20년 만에 첫 올림픽 출전에 도전했다. 2017년 국가대표에 합류해 자카르타·팔렘방과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냈지만 도쿄 올림픽 대표로는 발탁되지 못했다. 그는 간절했던 첫 올림픽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선수촌과 대회장만 오가며 훈련에 매달렸다. 부모님과도 생일에 딱 하루 선수촌 인근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잠시 얼굴을 본 게 전부일 정도였다.
둘은 2022년부터 혼합복식 호흡을 맞췄다. 임종훈은 이번 올림픽 단식에도 출전할 수 있었지만 혼합복식에만 집중했다. 임종훈은 “작년 3월 싱가포르 대회에서 일본 조를 꺾은 뒤 ‘이 정도면 마음먹고 혼합복식만 해도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번에 메달을 못 따면 8월 19일 입대할 계획이었으나 입영 20일 전에 병역 특례 혜택을 받는 ‘행운’도 받았다.
임종훈은 뼈가 웃자라 허리 근육과 신경을 찔러 만성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이번 대회 내내 시원한 공격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백핸드를 앞세운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와 함께 파트너를 편안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성격이 강점으로 꼽힌다. 신유빈은 “종훈 오빠는 내가 실수해도 ‘왜 그랬냐’ 이런 말 없이 ‘이렇게 하면 더 좋았겠다’, ‘다음에 이렇게 해보자’ 정도로 말하며 혼내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며 “오빠가 옆에서 잘 이끌어줘 즐겁게 뛸 수 있었다”고 했다. 임종훈은 “유빈이와 복식을 해서 이런 영광을 얻은 것 같다”며 “유빈이가 뭘 시켜도 몸이 부러지지 않는 이상은 하겠다”며 웃었다.
동메달 결정전에 이어 열린 결승전에선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조가 북한의 리정식-김금용 조를 세트 스코어 4대2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은메달을 목에 건 리정식-김금용 조는 이번 대회 북한 첫 메달리스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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