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간첩 몇 명이죠?” 前국정원 30년 베테랑에 질문 쏟아졌다
국제 스파이박물관서 좌담회… 300여 청중, 20개 질의 주고받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 스파이 박물관에서 최근 ‘한국의 방첩 활동에 대한 내부자의 관점’이란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박물관이 한국 국가정보원 협조를 얻어 서울에서 모셔온 인물은 하동환 전 국정원 대구지부장(57). 하씨는 2년 전 퇴직하기 전까지 약 30년을 국내외 방첩 전선을 넘나들며 간첩 검거에 전념했다. 지하혁명조직(RO), 왕재산 간첩단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의 실무를 담당했던 대공 수사 베테랑이다. 하씨는 박물관 소속 역사학자 앤드루 해먼드 박사와 300여 청중 앞에서 1시간 동안 대담했다.
하씨에게 질문이 스무 개 가까이 쏟아졌다. 하씨는 ‘활동 중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고 “도망가기 위해 미국 육상의 전설인 칼 루이스보다도 더 빨리 달린 적이 있다”고 했다. 국정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하씨가 “학점이 안 좋아 대기업에 못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답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1997년 김정일 지시로 파견된 암살조가 북한 최고위층 귀순자 이한영을 암살한 사건을 설명할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이 밖에 하씨에게 ‘한국 내 간첩은 몇 명이냐’ ‘진짜 북한 이탈 주민과 스파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이 쇄도했다. 하씨가 “더 자세히 말하면 후배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말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스파이 박물관은 2002년 설립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만여 점의 스파이 관련 전시물을 보유하고 있다. 4년 전 기네스북에 등재됐고, 지난해엔 약 69만 명이 방문한 워싱턴 DC의 명소다. 박물관이 지난 5월 북한 암살범·대남 공작원 등이 실제로 사용했던 독침펜 등 장비 일곱 점을 전시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하씨를 섭외한 건 ‘한국 스파이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본지에 “평일 저녁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 우리도 몰랐다”며 “남북한이 70년 넘게 대치 중이고 첩보전은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씨는 “북한의 간첩 활동은 반체제 인사를 암살하거나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에 간첩 조직을 결성해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은 남한이 친북(親北) 이념을 확산시키기 어려운 사회라 생각하지만 간첩들이 엄청난 공작금을 받는다. 물밑에선 많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강연 말미에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미국 정부의 지원과 협력에 항상 감사하다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께 미국에 온다고 말씀드리니 ‘70년 전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시더라”며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하씨는 이날 강연 후 본지와 만나 문재인 정권 당시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주도 입법으로 지난 1월부터 대공수사권이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된 것을 지적했다. 그는 “나는 안에서 간첩을 잡는 일류 수사관이었을지 몰라도 조직 밖 세상 물정을 모르는 헛똑똑이였다”며 “간첩 수사권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첫사랑이 안락사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하씨는 “60년 넘게 축적한 간첩 수사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넘겨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경찰도 원했던 것이 아니다”라며 “엄청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친정 국정원에 대해서도 “간첩만 열심히 잡았지, 국민에게 이를 알리는 데에는 소홀했다”며 “간첩의 존재는 국정원도, 간첩도, 북한도 다 알고 있는데 우리 국민만 잘 모르는 상황이 ‘설마 요즘 세상에 간첩이 있어’ 하는 안이한 의식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당장 올해부터 간첩 검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며 “수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같이 정치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 관청이 수사를 전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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