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면장님, 우리 면장님

최정희 아리랑TV 미디어홍보부장 2024. 7. 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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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고향의 면장님이 군수에 출마했다. 집안에 땅도 많고 인심도 후해서 평판이 좋았는데 그런 세간의 좋은 평을 바탕으로 출마하라는 부추김이 있었다고 한다. 선거 비용을 마련하려고 급매로 논과 밭을 팔았고 선거에 경험이 있다는 이들이 모여 캠프를 꾸렸다.

내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해서 선거 유세를 위해 읍내며 시장을 돌았다. 어딜 가나 사람 좋은 면장님을 반겨주니 희망적이었고, 내 친구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들떠 있었다. 하지만 후보 4명 중 기호 4번이었던 면장님은 4등을 했다. 그래도 노후를 위해 남겨둔 재산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문제는 4년 후 면장님의 재도전이었다. 이번엔 가족이 반대했다. 친구는 “엄마와 할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신다. 낙선했던 선거캠프 참모들 말만 듣는다”며 속상해했다. 재출마 때는 남은 땅 전부와 퇴직금까지 끌어모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참모라는 이들은 면장님의 노후와 가족을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부추겼을까. 어떤 이득을 보자고 꼴찌한 낙선자를 선거에 또 끌어들였을까. 최적의 군수감이라고 칭송하는 말에 귀 얇은 면장님이 깜빡 넘어갔다. 이들은 선거 전부터 “군수님”이라고 부르며 군수의 의전까지 흉내 냈다.

최근 골프를 시작한 지인이 처음 골프장에 갔다가 일행으로부터 골프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쭐한 김에 후반전부터 내기를 했다가 그날 게임비를 본인이 다 냈다며 허탈해 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의 일차적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옆에서 부추기는 이들도 사실상 공범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면장님이 당선되기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왜 객관적인 평가에는 귀를 닫고 입에 발린 소리에 전 재산을 걸었을까. 내 목표에만 매몰된 자에게 가짜 희망은 달콤하다. 조금 떨어져 제3자의 시선에서 보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왜 전체를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소 현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망상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질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젊을 때는 예쁘다는 소리에 우쭐해서 미인 대회 나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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