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명상영화 '인사이드 아웃2'

김한수 기자 2024. 7. 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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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2'의 한 장면. '불안'(오른쪽)은 점점 '기쁨'을 몰아내고 '본부'를 장악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의 흥행 열기가 대단합니다. 지난 25일 기준으로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기록 1위를 갈아치웠다지요. 그 전까지 1위였던 ‘겨울왕국2′의 14억 5368만 달러를 넘어 14억 6276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30일 현재 832만명이 관람하는 등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 극장에서 ‘인사이드 아웃2′를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해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극장에 갔습니다. 9년 전에 나온 전편도 보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여름방학용, 어린이 관객을 위한 영화이겠지’ ‘머리나 식히고 오자’ 정도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전 정보, 선입견 없이 관람한 덕분일까요. 오히려 영화에 금방 푹 빠지게 되더군요. 또한 영화가 진행될수록 ‘어, 이건 명상영화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후에야 왜 특히 20~30대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조선일보 영화담당 백수진 기자는 ‘심리치료영화’라고 표현했더군요. 명상의 효과 중 하나가 바로 심리치료 효과이지요. 최근 20~30대 사이에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사이드 아웃2′은 심리치료영화 혹은 명상영화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는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여러 감정들의 ‘권력투쟁기’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기쁨(joy)·슬픔(sadness)·버럭(anger)·까칠(disgust)·소심(fear)이가 먼저 자리잡고 있던 라일리의 머릿속(감정 제어 본부)에 갑자기 ‘사춘기 경보’가 울리더니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합니다. 불안(anxiety)·부럽(envy)·따분(ennui)·당황(embarrassment)와 추억(nostalgia)이 새 얼굴들입니다.

당장 ‘불안’과 ‘부럽’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어떤 질풍노도가 밀어닥칠지 충분히 예견됩니다. 명상에서도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불안’이 등장하지요. 대개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사춘기 이전까지 어린이의 삶은 늘 즐겁고 행복하지요. 항상 ‘뭘 하고 놀까?’ ‘뭘 하면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하지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진화는 행복을 향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언제 맹수가 나타날지, 언제 자연재해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미지의 위험에 잘 대비한 개체가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DNA 속에는 ‘불안’이 장착돼 있다는 말입니다. ‘불안’과 함께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는 감정은 ‘후회’이지요. ‘불안’이 미래에 대한 생각이라면 ‘후회’는 과거에 대한 생각입니다. 둘의 공통점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실,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과거는 어차피 지나간 일이어서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요. ‘불안’에 대해 흔히 예로 드는 일화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상사에게 인사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는 상황이지요. 이럴 경우, 혼자서 ‘나한테 불만있나?’ ‘내가 뭐 잘못한 일이 있나’ 등등 ‘불안의 날개’를 펴면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막상 직접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나한테 인사했었나? 난 못 봤는데?’ 정도의 ‘싱거운’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영화에선 새로 등장한 감정 중 ‘불안’이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본부를 장악하고 ‘기쁨’을 비롯한 옛 감정들은 본부에서 멀리 추방시켜 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라일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를 계획한다’는 명분으로요. 영화에서는 추방된 ‘기쁨’을 비롯한 감정들은 본부로 되돌아오기 위해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고생을 겪습니다. 그 사이 본부를 장악한 ‘불안’은 다른 감정들을 압도하고 독재자로 군림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감탄했습니다. 붉은색 폭탄머리를 한 ‘불안’은 한편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자기딴에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주인공의 마음을 불행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역할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더군요. 영화에서 라일리는 원하는 학교의 아이스하키 팀원으로 선발되는 것이 꿈입니다. ‘욕망’이 있는 것이지요. 그 욕망 때문에 ‘불안’이 생긴 것이고요. 온갖 걱정이 줄지어 밀려와 밤잠을 못 이루지요. ‘불안’의 지시를 받은 ‘불안 댓글부대’가 라일리가 팀원으로 선발되지 못할 이유를 끝도 없이 늘어놓습니다. 대표적인 부정적인 생각은 “나는 부족해(I’m not good enough)”라는 자책이지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자주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절대 자책할 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영화 감상을 적은 블로그나 댓글 가운데에는 ‘나는 부족해’ 이 대사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영화는 점점 폭주하던 ‘불안’이 마침내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쫓겨났던 ‘기쁨’ 등이 본부에 도착하면서 결말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결론은 ‘기쁨’이 ‘불안’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오히려 모든 감정이 각각의 긍정적·부정적인 면을 모두 인정하는 것으로 평화를 찾습니다. 명상을 지도하는 분들도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없애려 하면 더 일어난다. 대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일어난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관찰하면 어느 순간 사라진다. 마치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찌꺼기는 가라앉고 맑은 물이 드러나듯이”라고요. 얼마 전 인터뷰한 예수회 서명원 신부는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뛰어가는 개가 아니라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쳐다보는 소가 돼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달려오는 기차’를 마음의 흐름으로 본다면, ‘뛰어가는 개’처럼 휩쓸리지 말고 자기 일(풀 뜯는 일)을 하는 소처럼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펜싱 오상욱 선수의 경기 후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 선수는 결승에서 일방적으로 앞서가다가 경기 중반 아슬아슬하게 추격을 허용했지요. ‘저러다 금메달 놓치는 것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들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과감한 공격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인터뷰에서 오 선수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상대 선수가 따라올 때)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이 확 올라오더라. 그때 뒤에서 코치님이 ‘아니야. 넌 할 수 있어’라고 해서 힘을 냈다”라고요.

‘인사이드 아웃2′도 ‘나는 부족해’라고 자책하고 의기소침해 하는 이들에게 ‘난 괜찮은 사람’(I’m a good person)이라고, ‘아니야, 할 수 있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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