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파 자진 해산 앞두고, 총리는 ‘고뇌의 병나발’ 불었다 [방구석 도쿄통신]

김동현 기자 2024. 7.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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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日자민당 비자금 스캔들과 주요 파벌 ‘자진해산’ 뒷이야기
”대주가 기시다 총리, 니혼슈 병째 마실 정도로 고뇌”
내각 지지율 추락, 차기 총리 후보 ‘코이시카와 연합’ 누구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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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사면초가에 빠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NHK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7)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자신의 정치 원점(原點)이자 수장으로 있던 파벌 코치카이(宏池会·일명 기시다파)의 해산을 알렸습니다. 당시 세이와카이(清和会·아베파)를 비롯한 자민당 주요 파벌이 소속 의원들의 비자금 조성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코치카이도 예외 없이 수사망에 오르면서 내리게 된 결단이었습니다. 57년 역사의 코치카이는 누구보다 이 파벌에 애착이 있었다고 알려진 기시다의 손으로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최근 <무엇이 기시다 총리를 ‘파벌 해산’으로 몰고 갔나> 제하의 기사에서 당시 뒷이야기를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가 거세지던 지난해 말 자민당 내부엔 ‘기시다 총리는 왜 정권(집권 자민당)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지 않는가’라며 기시다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이 일본 사회를 휩쓴 이 시기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 소속 요직 의원들을 일소(一掃)했습니다. 마츠노 히로카즈(당시 관방장관)와 니시무라 야스토시(경제산업상) 등 각료들이 퇴진했고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 다카기 츠요시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 등도 자리에서 물러났죠.

마쓰노 히로카즈 전 일본 관방장관. /지지 연합뉴스

당시 기시다의 판단을 놓고는 ‘위기관리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란 평가와 함께, ‘아베파를 잘라내 정권 기반을 안정시키겠단 계획’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습니다. 올 9월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100명가량의 의원이 소속된 아베파 동향이 기시다 총리의 명운을 사실상 좌우하는데, 기시다가 재선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아베파 내부 결속을 헤집어 놓으려 한다는 추측이었습니다. 자민당 소속 의원과 그들의 비서들이 연일 검찰 조사를 받으며, 한 아베파 간부는 “기시다 정권 때문에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베파 내부엔 ‘총리는 검찰을 압박해 수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여론이 오랜 기간 굳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베 신조(1954~2022) 전 총리가 집권 시절인 2020년 검찰 간부 정년 연장을 결정했을 땐 야권에서 ‘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간부를 남겨 검찰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궁이 나왔습니다. 아베파 일각에선 ‘아베가 총리였다면 쉽게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시다를 향해 ‘검찰을 압박하라’는 눈총이 거셌다는 게 교도통신의 설명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애주가이자 대주가로 유명하다. 대만에서도 과거 일본 대표단으로 방문한 그가 '아무리 마셔도 끝까지 취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를 기시다의 '주호(酒豪) 전설'이라고 한다. /교도 연합뉴스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에서 이러한 얘기가 돈다는 보고를 받은 기시다는 그날 밤 관저에서 1800㎖짜리 니혼슈(日本酒·일본주)를 들곤 ‘병나발’을 불었다고 합니다. 기시다가 술에 강하단 것은 일본 정계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일본 정계 ‘제일의 주호(酒豪)’라고까지 불리는 그가 이날은 보기 드물게 만취한 채로 책상에 엎드려 잤다고 합니다. 당시 자민당 비자금 추문에 대한 그의 고뇌를 가늠케 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당시까진 기시다파 의원들의 비자금 조성 논란을 놓고선 ‘비서들의 사무 실수로 아베파 상황과는 다르다. 입건될 확률은 낮다’며 낙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1월 17일 기시다파 회계책임자 출신이 검찰에 입건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사태가 급변합니다. 다음날 기시다는 집무실에 기시다파 간부들을 비공식으로 불러, ‘파벌 해산’ 계획을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반대하는 이는 없었고, 대부분 ‘총리 판단에 맡기겠다. 파벌이 해산해도 우리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며 결정을 지지해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약 일주일 지난 1월 23일 기시다파 해산 소식이 발표됐습니다.

2022년 5월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를 위해 도쿄 미나토구의 한 회장에서 행사를 연 코치카이(자민당 기시다파). 기시다 후미오(오른쪽에서 넷째) 연단에 올라 오른손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디지털

기시다는 그간 자신이 ‘코치카이에 누구보다 애착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코치카이 창설연도는 1957년으로 기시다가 태어난 해와 같습니다. 기시다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코치카이 창설자인 이케다 하야토(1899~1965) 전 총리를 늘 꼽았습니다. 해산 결단을 앞두곤 측근들에게 “내 인생은 늘 코치카이와 함께였다. 그 최후를 스스로 고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했지만,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파벌을 넘어) 자민당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안’이 지난달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자민당 의원들의 주요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쓰였다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 입장권’ 구매자 공개 기준액을 기존 20만엔에서 5만엔으로 낮추고, 비서 등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의원이 정치자금 보고서의 ‘확인서’를 직접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관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집권 자민당과 기시다 총리를 향한 국민의 불신(不信)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달 8일 일본 공영방송 NHK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5%고 불지지율은 57%입니다. 국민 과반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민당 지지층에 한정한 내각 지지율도 50% 이하입니다. 이 수치가 50% 아래로 떨어진 건 2012년 12월 자민당이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정권 교체’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자민당은 28.4%를 기록 중입니다. 낮은 지지율이지만,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5.2%로 그 절반의 절반도 안됩니다. 그나마 야당 중 가장 높습니다. 무당층(지지 정당 없음) 비율은 47.2%로 계속 오르는 추세입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기시다의 정적(政敵)으로 꼽히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지난달 한 방송 인터뷰에서 “(기시다 정권에 대한) 국민 불신감이 상당하다”며 사실상 퇴진을 요구했고요. 기시다의 ‘뒷배’로 평가되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마저 지난달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안을 놓고 그와 의견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지금 기시다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입니다.

그러면 두 달도 안 남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는, 사실상 ‘차기 총리’ 후보로는 누가 거론되는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끝맺겠습니다. 지지통신의 지난 5~8일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다음 자민당 총재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으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22.1%의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어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10.9%)과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5.2%), 고노 다로 디지털상(5.1%),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4.0%)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3.2%로 6위였습니다.

고이즈미(小泉·왼쪽부터) 전 환경상과 이시바(石破) 전 간사장, 고노(河野) 디지털상으로 이뤄진 ‘코이시카와(小石河) 연합’.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를 지지했던 이 연합은 올 9월 선거에선 경쟁자로 맞붙을 전망이다. /산케이신문 디지털

이들 중 고이즈미(小泉) 전 환경상과 이시바(石破) 전 간사장, 고노(河野) 디지털상은 각자의 성(姓)을 따 이른바 ‘코이시카와(小石河) 연합’이라고 불립니다. 직전 총재선인 2021년 기시다에 맞섰던 고노를 나머지 두 명이 지지하면서 붙은 별명입니다.

당시 선거 패배 이후 연계 고리가 허물어진 ‘코이시카와 연합’은 올해 총재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될 전망입니다. 세 명 모두 자민당 지지층은 물론 일본 전국에서 인지도가 높습니다.

고이즈미(小泉·왼쪽) 전 환경상과 이시바(石破·오른쪽) 전 간사장, 고노(河野) 디지털상으로 이뤄진 ‘코이시카와(小石河) 연합’.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를 지지했던 이 연합은 올 9월 선거에선 경쟁자로 맞붙을 전망이다. /데일리신초

‘코이시카와 연합’과 다른 자민당 차기 총재 후보들에 대해서는 다음 주 이후 레터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 /조선일보DB

7월 31일 49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사면초가에 빠진 기시다 후미오 내각과 올초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면 50번째 레터네요. 8월이면 연재 1년째입니다.

횟수나 기간에 연연치 않고, 계속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47~48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힙합댄스 안돼, 수업중 물마시지마… 日중학교 교칙이 왜이래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7/17/ODQ33VAR2NHZ7D3LAJDFET3XGU/

지자체장 비리 스캔들 넉달째, 내부고발자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7/24/2S65ZFQSNVCADIXNBGT4AOLQ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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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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