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CIA와 FBI는 우방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4. 7. 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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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Midjourney

남북 당국 간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숙소인 고려호텔의 방문을 열었더니 냉기가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아! 추워”라는 말이 나왔다. 회의를 마치고 들어오니 객실에 난로가 비치돼 있었다. 독백이었지만 북측은 몰래 듣고 있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시절 중국 정보기관인 안전부 산하 현대국제연구원과의 정례 세미나를 위해 베이징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중국 측 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불편한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안부 인사를 한다. 중국 방문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는데도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한다. 휴대전화 도·감청이 상시화되고 각종 CCTV로 감시한 결과다.

도·감청과 미행, 감시는 사회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역시 사회주의 독재 국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어느 부분에서는 한층 치밀하다. 누가 더 첨단 장비를 사용하고 세련된 정보 활동을 수행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본래 첩자(諜者)라는 단어에서 첩(諜)은 몰래 엿본다는 의미다.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조직이나 국가에 사활의 문제다.

서방 정보기관 중에서는 단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이 돋보인다. 이민자 사회인 만큼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모국이나 조상과 연계된 국가를 위해서 정보를 빼돌린다면 혼란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미국은 오래전에 관련 법을 제정했고,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CIA나 FBI가 철저히 수사해왔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법적 근거인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1938년 나치의 선전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됐다. 미 연방 검찰은 31쪽에 달하는 공소장에서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의 요원(agent)으로 활동했다’는 다양한 물적 증거를 확실하게 적시했다. 요원 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면세점 영수증을 포함해 ‘빼박 증거’를 완벽하게 제시한 것은 장기간의 도·감청 산물이다. FBI가 과거 워싱턴 주재 외국 대사관들을 불법 도청하고 무단 침입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수만명의 요원과 엄청난 예산을 바탕으로 외국 스파이에 대응하고 각급 정보기관의 방첩 활동을 총괄 조정한다.

수미 테리 사건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할 당사자는 우리 정보기관과 외교부다. 우선 정보 활동의 기본 원칙이 정보관(handler)들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국무장관과의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수미 테리를 대사관 번호판을 단 공용 차량으로 픽업하는 허술한 동선(動線)은 국가정보학 ABC 원칙에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 공관원들은 미국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한국계 인사를 최소한으로 접촉해야 한다. 지한파를 격려해야 하지만 그들을 직접 활용하는 수집 활동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어설픈 정보활동은 그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고 종국적으로 우리 정보기관 역시 몰락하는 길이다.

정보관의 현지 언어가 유창하지 못해 해외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인사만을 대상으로 첩보를 수집하는 구태의연하고 아마추어적 정보활동은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견 요원 선발부터 적격자를 선발하지 않으면 예산 낭비이자 사달의 근원이 된다.

또한 우방이라고 해서 정보 수집 행위를 눈감아줄 것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한미 동맹이 혈맹이고 핵 동맹이지만 국익 수호에 예외는 없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용산 국가안보실장 도·감청 시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역대 우리 대통령들이 외국 정보기관들의 청와대에 대한 정보 수집 시도 때문에 고심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미 관계가 좋다고 해서 워싱턴을 서울 시내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수미 테리를 둘러싼 정보 파동을 통해 미국은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다른 국가들의 정보기관에 경고장을 날리는 확실한 시범을 보였다.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건 아니건 미국은 구별하지 않는다.

FBI 뉴욕지부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됐으며 외국 스파이와 협력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지 끝까지 추적해 체포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매우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워싱턴 시내 중심지 듀폰 서클(Dupont circle)에서 FARA 위반 여부의 기준은 미국의 국익 침해 여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법 적용을 자의적으로 한다. 수미 테리는 한국계이지만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정보 요원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

10년간 수미 테리가 제공했던 협력과 정보는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및 미·북 간의 접촉 동향과 세미나 개최, 언론 기고 등은 FARA가 예외로 인정하는 학술 연구로 접근할 수 있다. 구태여 단순 팩트 수집에 한국계 미 전문가를 끌어들여 금품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 투명하고 전문적인 학술 및 공공 외교로 일부는 해결이 가능하다.

인간 정보(humint)를 수집하는 주먹구구식의 고전적인 정보 활동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본이 공공 외교용 정보 활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은 벤치마킹을 해볼 만하다. 위안부 왜곡 논문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로스쿨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일본 정부의 훈장까지 받으며 미쓰비시 연구 기금을 받아 친일 학술 활동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개한다.

램지어 교수는 심지어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군 학살설까지 주장했다. FARA를 넘어 학문적 접근으로 미국 학계에 파급력이 작지 않은 고차원적 활동이다. 최소 10~20년에 걸쳐 미국 전역에 일본 국익을 옹호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이 일본의 정보 활동이자 공공 외교의 목표다. 우리에게도 국격에 맞는 품격있는 정보 활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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