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3] 재빨리 출세하는 그들을 세상은 도둑놈이라 부른다
“자네가 빨리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부자이거나 부자처럼 보여야 하네. 부자가 되려면 선풍을 일으켜야 하지. 그렇게 못한다면, 뭣하지만 사기라도 쳐야 해. 자네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일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을 걸세. 세상은 그들을 도둑놈이라고 부르지. 인생이란 부엌보다 나을 것도 없으면서 썩은 냄새는 더 심하다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지. 손 씻을 줄만 알면 돼.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중에서
유명 유튜버는 남의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수천만원을 벌었다. 62만여 업체들은 3조원 이상의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부당하게 수급했고, 사직 이유를 허위로 작성하고 받아 간 실업 급여액은 한 해 300억원이 넘는다. 이쯤 되면 눈먼 돈을 벌지 못한 사람만 바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이 야당이 내놓은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법’을 찬성한다.
티몬 사태로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책임져야 할 대표는 보이지 않는다. 여러 회사를 무리하게 인수, 주식 상장을 노린 것으로 알려진 대표가 계획적으로 해외에서 자금을 관리했다면, 줄도산 위기에 빠진 업체들은 나 몰라라 하고 거액을 손에 쥘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두 딸에게 전 재산을 주고도 버림받아 쓸쓸히 죽어간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에는 보트랭이라는 탈옥수가 나온다. 그는 힘들게 공부하지 말고 같은 하숙집에 살고 있는 빅토린과 결혼하라고 젊은 법학도 라스티냐크를 부추긴다. 빅토린의 오빠를 죽여줄 테니 그녀가 백만장자 아버지의 유일한 상속녀가 되면 수고비를 달라고 제안한다. 보트랭은 경찰에 체포되지만, 라스티냐크는 세상이 원래 부패했고 영악하게 살아남는 게 능력이라고 깨달았을까. 그는 사교계를 발판 삼아 출세하리라, 다짐하며 소설이 끝난다.
성실과 노력을 이야기하면 외면받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며 땀 흘려 일해야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사기를 치거나 도둑놈이라 불려야 쉽게 출세할 수 있다는 보트랭의 궤변을 가볍게 부정할 수 있을까. 1800년대를 살았던 소설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쉽게 벌어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고 싶은 욕망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작동한다. 법과 정치가 엄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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