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시간이 걸음을 떼면

2024. 7. 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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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이 열렸다.

누가 사는지 어떤 집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난 몇 달간 그 집 창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길이 번지거나 창문이 터져나갈 정도의 큰 불은 아니었지만 닫힌 창틈으로 집요하게, 꽤 오랫동안 연기가 솟구칠 정도였으니 피해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구마 몇 개 태웠다고 저렇게까지 온 창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나? 왜 인기척이 없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해 검은 연기를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119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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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이 열렸다. 나는 창밖으로 목을 길게 빼 맞은편을 살폈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내려다보이는 건물 꼭대기층, 틀림없이 그 집이었다. 누가 사는지 어떤 집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난 몇 달간 그 집 창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겨울 그 집에는 불이 났었다. 불길이 번지거나 창문이 터져나갈 정도의 큰 불은 아니었지만 닫힌 창틈으로 집요하게, 꽤 오랫동안 연기가 솟구칠 정도였으니 피해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 연기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태평하게도 군고구마를 해먹으려다 태운 모양이라고, 이제 곧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구마 몇 개 태웠다고 저렇게까지 온 창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나? 왜 인기척이 없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해 검은 연기를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119를 눌렀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건물 옥상에 나타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연기가 솟는 집을 살피는가 싶더니 또 금세 그 집 앞 복도에 나타났다. 소화전에서 호스를 끄집어내는 소방대원의 모습을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연기가 더 짙고 선명해진 듯해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창문에서 뭔가가 버둥대는 모습을 말이다. 빗살창에 매달려 창문 꼭대기로 기어오르려 하는 건 다름 아닌 잿빛 고양이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방충망이 바깥쪽으로 불룩하게 늘어졌다. 몇 번만 더 버둥대면 방충망째 뜯겨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안내방송에 나오는 그 출동현장 말인데요. 방충망에 끼어 있는 고양이도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대원의 팔이 창 쪽으로 튀어나왔다. 좁은 공간인지 불편한 각도로 뻗은 팔이 기겁해 도망치려는 고양이를 착실히 잡아 안쪽으로 사라졌다. 모든 게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나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주말의 도로 위를, 캐럴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그곳의 누구와도 닮지 않은 얼굴로 통과하고 있을 누군가를 말이다. 그을음과 연기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던데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으려나. 수리 기간 동안 고양이와 함께 지낼 곳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누구도 답해주지 않을 것을 혼자 궁금해했다. 진화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피해가 작다거나 복구가 손쉬울 리 없었다. 불은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니까, 불의 흔적은 흉포하고 광범위하며 생명력이 아주 기니까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 집 창문은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폭우와 폭염으로 얼룩진 여름에 접어들도록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문이 열린 것이다. 집에 들어선 사람이 수리를 의뢰받은 기술자든 고양이 주인이든 부동산중개업자든 상관없었다. 닫아건 문 안에서 멈춰 있던 시간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이 내겐 중요했다. 바람과 햇빛 속에서 많은 것이 지워지고 다시금 단련될 것이었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창에서 물러섰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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