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시간이 걸음을 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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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이 열렸다.
누가 사는지 어떤 집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난 몇 달간 그 집 창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길이 번지거나 창문이 터져나갈 정도의 큰 불은 아니었지만 닫힌 창틈으로 집요하게, 꽤 오랫동안 연기가 솟구칠 정도였으니 피해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구마 몇 개 태웠다고 저렇게까지 온 창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나? 왜 인기척이 없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해 검은 연기를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119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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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주말의 도로 위를, 캐럴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그곳의 누구와도 닮지 않은 얼굴로 통과하고 있을 누군가를 말이다. 그을음과 연기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던데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으려나. 수리 기간 동안 고양이와 함께 지낼 곳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누구도 답해주지 않을 것을 혼자 궁금해했다. 진화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피해가 작다거나 복구가 손쉬울 리 없었다. 불은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니까, 불의 흔적은 흉포하고 광범위하며 생명력이 아주 기니까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 집 창문은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폭우와 폭염으로 얼룩진 여름에 접어들도록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문이 열린 것이다. 집에 들어선 사람이 수리를 의뢰받은 기술자든 고양이 주인이든 부동산중개업자든 상관없었다. 닫아건 문 안에서 멈춰 있던 시간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이 내겐 중요했다. 바람과 햇빛 속에서 많은 것이 지워지고 다시금 단련될 것이었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창에서 물러섰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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