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칼럼]‘트럼프 집권 2기’를 보는 한국인의 독특한 시각
남북관계 개선 환상이 낳은 기현상
재집권 때 경제 파급효과는 부정적
이념에 사로잡힌 판단착오 경계해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지난주 사퇴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높았다. 작년 9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한국인의 바이든 선호도는 52%, 트럼프는 24%였다. 총알이 귀를 스친 뒤 주먹을 흔들며 “파이트”를 외치는 트럼프에게 환호한 한국인이,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후 25일 만에 사퇴한 바이든을 안타깝게 지켜본 이들의 절반에 채 못 미쳤다는 의미다.
미국 대통령으로 바이든을 신뢰한다는 한국인 비율은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재작년 8월 조사 때 70%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취임 첫해인 전년도보다 3% 오른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무너졌던 한미동맹 복원의 안도감이 우리 대기업들의 투자를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넘어선 셈이다.
이에 비해 취임 첫해인 2017년 17%였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2018, 2019년에 각각 44%, 46%까지 치솟았다가 2020년에는 17%로 낮아졌다. 그가 싱가포르,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면서 한반도 화해 무드가 고조됐을 때 정점을 찍었다가 하노이의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후 대북 관계가 꼬이면서 원상 복귀했다.
특이한 건 현시점에서 차기 미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트럼프를 우리 사회의 좌우 양극단이 동시에 지지했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 말 광화문 우파 집회에선 김정은의 뒤통수를 친 트럼프를 칭송하는 구호가 자주 들렸다. 다만 작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 개최한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뒤 그런 구호는 감소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최우선 가치로 보는 좌파 지지층에서는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선호가 적지 않다. “김정은이 나를 그리워할 것”이란 트럼프의 최근 발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마음이 움직였을 것 같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동맹국을 이익을 챙길 비즈니스 상대로 보는 트럼프를 좌파 세력이 지지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처럼 우파 포퓰리스트나 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가 그와 궁합이 맞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집권에 기대가 클 것이다. 한때 ‘장사꾼’ 트럼프가 낫다고 봤던 중국은 “중국 제품에 60∼100% 관세를 물리겠다”는 그를 환영하기 어렵다.
남북 관계를 제외하고 트럼프의 공약, 발언이 한국의 ‘먹고사는 문제’에 미칠 영향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이 실현되면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 대신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은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수출이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오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역대 최대로 커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트럼프가 대놓고 문제 삼을 가능성이 커서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춰 미국에 수십조 원을 투자 중인 우리 반도체·배터리·전기차·태양광 기업에 트럼프 재집권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취임 첫날 IRA를 폐기할 것”이란 약속이 실현될 경우 미 정부가 약속했던 보조금, 세제 혜택은 공수표가 된다.
빚에 짓눌려 사는 한국의 중산층, 자영업자, 중소기업에도 악영향이 올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하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가 집권할 경우 고금리가 더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를 낮추겠다는 그의 감세정책이 이미 경고음이 켜진 미국의 재정 사정을 악화시켜 미 국채 발행을 늘리고, 이로 인해 미국 국채 값이 하락(국채 금리는 상승)할 것이란 우려다. 보편관세로 발생할 인플레이션까지 고려하면 고물가, 고금리는 트럼프 2.0시대의 ‘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질적으로 트럼프는 포퓰리스트다. 그의 공약, 발언에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미래에 벌어질 문제들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미국 정치 전문가들이 ‘푸틴보다 트럼프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변덕도 심하다. 최근 “대만은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 미국에 방위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돌발 발언으로 세계 반도체 주가를 흔들어놓은 것 같은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이런 트럼프의 2기 집권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 한국의 리더들이 이념 편향에 사로잡혀 냉정한 계산 없이 멋대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나라 전체가 낭패를 보게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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