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美대선 100일 앞… ‘약자=민주당 지지’ 공식 바꾸고 있는 노숙인 문제
불법 이민자 유입 등으로… 뉴욕 노숙인 20년 최고
“세금 안 낸 외국인만 수혜”… 美 시민 불만 고조
‘민주 텃밭’ 캘리포니아州… 주민 불만에 노숙인 쉼터 해체
노숙인들이 종종 매장을 급습해 물건을 훔치거나 밤에 칼로 직원을 위협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맨해튼이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렸던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대선에서는 이 짜증나는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을 뽑겠다”고 말했다.
그간 미 정치권에서는 대도시 거주자, 비(非)백인계 등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게 일종의 불문율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선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최근 몇 년간 노숙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불법 이민자, 마약 중독자, 노숙인 등을 ‘약자’로 여겨 이들에게 온정적인 정책을 편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책 때문에 생활이나 경제활동에 피해를 봤다고 여기는 대도시의 ‘친민주당 성향 저소득층’이 공화당을 지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런 분위기가 이번 대선에서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뉴욕 노숙인 7만 명…20년 최고치
노숙인이 급증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계속되고 있는 집값 상승이다. 둘째는 불법 이민자 유입이다.
하버드대 공동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사태 뒤 미 전역의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의 기존 최고치보다도 30% 이상 올랐다. 맨해튼 기준으로도 방 하나짜리 아파트 가격이 코로나19 사태 전 방 두 개짜리 아파트 값보다 비싸졌다.
이는 그만큼 집값을 내지 못해 거리로 밀려나는 미국인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65세 이상 노인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사람들은 모두 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서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뉴욕은 미 대도시 어디에도 없는, ‘잠잘 곳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침대를 보장해야 한다’는 일명 ‘쉼터에 대한 권리’(Right to Shelter)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불법 이민자들까지 대거 뉴욕으로 유입되면서 쉼터는 이제 일주일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을 만큼 완전 포화 상태다.
주로 남부 텍사스주를 통해 미국에 입국한 불법 이민자들이 차로 29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뉴욕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불법 이민자들을 무료 버스에 태워 뉴욕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국경지대에 접한 우리가 겪는 불법 이민자 문제를 당신들도 한번 느껴보라’는 취지다. 애벗 주지사는 뉴욕은 물론이고 수도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는 주요 대도시로도 불법 이민자를 실은 버스를 보냈다. 이로 인해 ‘텍사스주에만 도착하면 비행기처럼 큰 무료 버스가 있다’는 소식이 불법 이민자들 사이에 퍼졌고, 더 많은 이민자가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가장 많은 불법 이민자를 ‘수송 당한’ 뉴욕은 지난달까지 총 4만5033명의 불법 이민자를 받았다. 이들 중 많은 수는 노숙인이 됐다. 결국 뉴욕은 2022년 이후 노숙인이 가장 많이 늘어난 도시로 변했다. 쉼터를 불법 이민자들이 차지하면서 집을 잃은 미국 시민이 쉼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NYT는 “처음 쉼터에 대한 권리 법이 만들어진 1981년만 해도 뉴욕 주민을 위한 125개의 침대만 마련하면 됐지만 지금은 6만5000명의 이주민을 포함해 12만 명 이상이 쉼터에서 산다”고 전했다.
● 시민 “불법 이민자로 우리 혜택 줄어” 불만
뉴욕 시민들은 이런 상황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맨해튼 거주자 마크 씨는 “평생 세금을 낸 미국 시민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데 불법으로 넘어온 외국인이 쉼터뿐 아니라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선불) 카드까지 제공받는 상황이 공평하지 않다”고 했다.
노숙인과 관련된 사건사고 또한 시민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노숙인의 마약 문제, 정신건강 이상 등이 얽혀 최근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행인을 구타하거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을 선로로 밀쳐 죽거나 다치게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절도 사건 또한 빈번해져 최근 뉴욕 내 주요 상점에서는 자물쇠가 달린 유리 진열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안에 보관된 상품들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치약, 칫솔 같은 평범한 생필품이다. 노숙인이 주로 이런 물건을 노리는 탓이다. 카페 안으로 뛰쳐 들어와 카운터 앞에 놓인 팁을 넣는 통을 들고 도주하거나, 냉장 매대에 전시된 음료수를 훔쳐 달아나는 상황도 빈번하다.
최근 뉴욕포스트는 맨해튼, 퀸스, 브롱크스,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등 뉴욕 내 5개 자치구의 이민자 쉼터 설치 현황을 분석하며 “절반의 쉼터가 퀸스 등 가장 가난한 지역에 몰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제3세계’”라며 “우리 지역에 범죄를 가져오는 게 민주당이 원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공화당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 불법 이민자 의제를 항상 거론하는 이유 또한 이런 민심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캘리포니아주도 노숙인 캠프 해체
지난달 미 연방대법원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노숙인을 몰아내는 데 더 큰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25일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또한 지역 내 수천 개 노숙인 캠프를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그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뉴섬 주지사도 최소 18만 명의 노숙인이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현실’과 커지는 주민들의 불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보수파와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세력은 그간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지만 노숙인 의제에서 ‘특이한 동맹’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날아오른 ‘삐약이’… 신유빈-임종훈, 탁구 혼합복식 동메달
- 유도 이준환, 남자 81㎏급서 세계랭킹 1위 꺾고 동메달
- 尹-韓, 어제 오전 대통령실서 독대
- 구영배 “동원 가능 자금 800억…티몬-위메프에 다 쓸수 있을지는 미지수”
- [사설]제2부속실 설치… ‘국정 不간여’ ‘비선 차단’ ‘투명성’이 관건
- [사설]7년 전 합의안 놔두고 ‘방송3법’ 의결-거부 쳇바퀴 도는 여야
- 한번 땀이 나면 잘 멈추지 않고 땀이 나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
- ‘시청역 역주행 참사’ 운전자 구속…“도망 염려”
- ‘일본도’ 가해자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로 생각해 살해” 범행 이유 진술
- [사설]“임대차2법 폐지 검토”… 자칫하다간 혼란만 부추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