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차베스 동상 부수고 화염병 던지고…군경은 무력 진압

윤기은·김유진 기자 2024. 7. 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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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선 불복’ 시위 격화…마두로 “야권 쿠데타”
짓밟히는 포스터 베네수엘라 대선 다음날인 29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대선 결과 조작 의혹 항의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포스터를 짓밟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심 곳곳서 재검표 요구…시위대에 최루탄·고무탄 쏴
야권 “우리가 73% 득표 정보 입수”…미국은 제재 시사

지난 28일(현지시간)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집권 통합사회주의당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불투명한 개표 과정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부수고 화염병을 던지는 등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의 대선 결과 불복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고 있다.

현지 매체 엘디아리오는 29일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아라과, 카라보보, 바리나스 등 곳곳에서 대선 재검표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길거리를 꽉 메운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려 소음을 내는 ‘카세롤라소’ 시위를 벌였다. 엑스(옛 트위터)에는 시위대가 마두로 대통령이 그려진 대형 선거 포스터를 찢거나, 마두로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인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동상이 바닥에 떨어지자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군경은 무력 진압에 나섰다. BBC는 카라카스에서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다고 전했다. 정부는 대통령궁을 봉쇄하고, 국회의사당과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보안을 강화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카라카스에서 총성이 여러 차례 들렸다고 보도했다. 현지 인권단체 ‘포로 파넬’은 엑스에 올린 글에서 북서부 야라쿠이주에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46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군인 20명 이상이 총상 등을 입고 다쳤다고 말했다.

당선증 들어 보이는 마두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서 당선증을 받은 뒤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선거 결과에 불복한 ‘민주야권연합(PUD)’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PUD 대선 후보가 73.2%를 득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선관위는 원래 절차대로 홈페이지에 관련 기록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 이튿날 바로 마두로 대통령에게 당선 확인증을 준 선관위는 지역별 후보 득표율과 1, 2위 후보 외 다른 후보들의 득표 현황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선관위의 당선 확정 발표가 나온 직후 마두로 대통령의 ‘걸림돌 제거 작업’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는 이날 당선 축하 행사에서 후안 과이도 전 임시대통령을 언급하며 “(야권이) ‘과이도 2.0’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우익 극단주의 단체의 소행”으로 지칭했다. 과이도는 2018년 대선 당시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이 나오자 이듬해 야권과 미국 등의 지지를 업고 임시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몇몇 군인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지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타레크 윌리암 사브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북마케도니아에서의 (개표 시스템) 해킹 시도를 포착했다”며 야권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기밀 정보에 따르면 이 사건은 (과거 마두로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레스테르 톨레도와 관련돼 있다”며 “야권 후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당선과 관련해 국제사회는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는 그의 재선을 축하했다. 좌파 성향 정부가 들어선 브라질, 멕시코는 “개표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당선 축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관망했다. 우파 지도자가 있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9개국은 미주기구(OAS)에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 재검토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자 마두로 행정부는 아르헨티나,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우루과이 등 7개국에 대해 단교를 선언했다. 파나마와 도미니카공화국에 대해선 항공편 운항도 중단시켰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날 베네수엘라 정부에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최근 대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하며 제재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표한 대선 결과가 미국 측이 파악한 독립적인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마두로 정부의 향후 조치에 따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재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앞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겠다고 약속한 것을 믿고 일부 제재를 완화했다.

윤기은 기자·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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