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은 나중에”…교육부 ‘입맛대로’ 통계 공개
‘보도자료’ 아닌 ‘보도참고자료’ 형태…시민 접근 제한도 문제
교육부가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본조사) 결과 발표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교육부가 정책 사각지대 발굴을 명목으로 각종 교육 데이터 공개 범위는 확대하면서 부정적 이슈와 관련된 통계는 감추거나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가 지난 26일 기자단에 배포할 예정이던 ‘주간보도계획’에는 ‘※보도참고자료 제공 안내 - 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본조사) 결과 발표’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실시한 2차 학폭 실태조사 보도참고자료의 당초 공개 예정일은 31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26일 오후 공식 배포된 주간보도계획에는 이 내용이 빠졌다.
교육부는 오는 9월 2024년 1차 학폭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함께 ‘2023년 2차 학폭 실태조사’도 공개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차피 9월에 발표하니까 묶어서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표본조사로 진행된 2차 학폭 실태조사 결과 공개가 늦어졌기 때문에, 올해 조사 결과와 묶어 9월에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학폭 실태조사는 연 2회 실시한다. 한 회는 전수조사로, 나머지 한 회는 전체 학생의 4% 표본조사로 이뤄진다. 두 차례 학폭 실태조사 결과는 모두 공표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년 1차 학폭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폭 피해 응답 비율은 1.9%로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주요 이슈에 관한 통계 자료를 ‘보도자료’가 아닌 ‘보도참고자료’ 형태로 공개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도자료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게재돼 시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보다 공식적인 성격을 띤다. 하지만 보도참고자료는 통상 통계 중심으로 기자들에게만 배포된다.
교육부는 최근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순직 1주기 때에도 ‘교육활동 보호 관련 통계’를 보도참고자료로 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설명이나 해석이 들어가지 않고 자료로 제공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보도자료에는 각종 정부 통계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붙는 반면 보도참고자료는 통계 위주로만 제공한다.
교육부가 교육 관련 통계나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상황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교육부는 지난 5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데이터를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까지 연구자에게 전면 개방해 정책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고 했다. 교육 데이터 전면 개방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다.
이에 반해 교육부에 부정적 여론이 일 가능성이 있는 학폭 실태조사 데이터 발표는 최대한 늦춰 ‘이중잣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교육부에선 통계를 입맛대로 공개하는 등의 일이 적지 않았다”며 “발표 시기 등을 조정해 해석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시도라면 특히 문제”라고 했다.
정부의 실태조사나 통계 수치 ‘감추기’는 교육부만의 일이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 실시한 가족 실태조사·청소년 종합실태조사 결과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면서 악화된 성평등 인식, 계층 간 결혼 인식 격차 등 유의미한 수치가 나온 부분은 제외해 논란이 일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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