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다음엔 꼭 애국가 들려줄게요

일본 국적 포기한 독립투사 후손…유도 허미미의 ‘은빛 업어치기’

허미미가 30일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은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파리 | 연합뉴스

일본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
“태극마크 달고 딴 은, 더 값져
BTS ‘뷔’ 만날 수 있을까요”

2002년생 허미미는 ‘메이크업’이 취미다. 화장하며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웃음이 많은, 아직 앳된 젊은이다. 그러나 보기 드문 강한 몸과 마음을 가졌다.

김미정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은 “미미는 힘이 장사는 아닌데 안 지친다. 운동할 때도 심박수가 거의 수면 상태와 비슷하다. 땀도 별로 안 흘리고 숨이 가쁘지도 않다. 그래서 ‘헉헉대도록 운동하면 넌 얼마나 더 잘할까’라고 가끔 농담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미미는 재일교포 3세다. ‘유도천재’라 불렸고 일본의 유도 명문 와세다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2021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한국 선수로 유도를 해서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일본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갖고 있던 스무 살 허미미는 그길로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2022년 2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통해 허미미는 대한민국의 유도 국가대표가 됐고 지난 5월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7㎏급 챔피언에 올랐다.

허미미는 30일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급에서 은메달을 따내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유도에서 8년 만에 나온 올림픽 메달이었다.

세계랭킹 3위인 허미미는 5월 세계선수권에서 꺾었던 세계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와 올림픽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연장전(골든스코어)까지 간 뒤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방어하는 데구치와 접전을 벌였으나 마지막에 위장공격으로 지도를 받으면서 반칙패했다.

아쉬움이 남는 마지막 판정에 속도 많이 상했지만 허미미는 곧 밝게 웃었다. 발음이 서툴 뿐 한국어를 다 알아듣고 말도 잘하는 허미미는 결승전을 마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한국에 온 뒤 올림픽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메달을 딸 수 있어서 좋다. (금메달이 아니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메달을 따) 조금 좋다”며 밝게 웃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면 울려 퍼질 애국가를 멋지게 부르기 위해 가사를 다 외워왔지만 부르지 못하게 된 허미미는 “연습해왔는데 너무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선 꼭 부르고 싶다”며 “이번에 올림픽을 치르면서 태극마크를 택한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태극마크 달고) 결승까지 가서 행복하다. 다음 올림픽에 나가서는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자신을 ‘대한민국 유도 선수 허미미’로 이끌어준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허미미는 “할머니가 한국 선수로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나를 엄청 예뻐해주셨기 때문에 할머니를 믿고 할머니 말대로 한국을 택해서 왔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에서 은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앞선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뷔’와 오상욱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허미미는 은메달을 획득한 뒤 “뷔를 좋아한다. 만날 수 있으면…. 보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요?”라며 눈을 반짝였고 “(오상욱은) 어제 만났다. 축하한다고 인사드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함께 연습해준 파트너들에게 고맙다. 이제 같이 파스타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또 웃었다.

파리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