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댐 14개 건설”…MB 4대강 데자뷔
23년 만에 대규모 신설·재개발
환경부 ‘기후대응 댐’ 지칭하며
극한 호우 대비한 ‘물그릇’ 주장
저수용량 적어 홍수 예방 ‘의문’
환경파괴·주민 반발 고려 안 돼
정부가 신규 댐 건설과 기존 댐 재개발을 합쳐 총 14개 댐을 새로 짓기로 했다. 12개 이상의 댐을 한꺼번에 대규모로 건설하는 것은 2001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이다. 2001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전국에 12곳을 선정해 댐 건설 신설 수순을 밟았는데,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큰 논란을 불렀다. 정부의 이번 계획은 댐이 대량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극심한 주민 반발 같은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댐 건설 후보지를 발표했다. 지난 25일 장관 취임 이후 6일 만에 대규모 토목공사 계획을 밝힌 것이다. 14개 댐을 용도별로 보면 다목적댐 3곳, 홍수조절 댐 7곳, 용수전용 댐 4곳이다.
후보지로 선정된 곳은 경기 연천 아미천, 강원 양구 수입천, 충남 청양 지천, 강원 삼척 산기천, 충북 단양 단양천, 경북 청도 운문천, 전남 화순 동북천, 경북 김천 감천, 경북 예천 용두천, 경남 거제 고현천, 경남 의령 가례천, 울산 울주 회야강, 전남 순천 옥천, 전남 강진 병영천 등이다. 고현천·가례천·회야강·옥천·병영천 댐을 제외하면 모두 신규 댐이다.
김 장관은 후보로 지정한 댐들을 ‘기후대응 댐’이라고 부르면서 다목적댐이 홍수의 근원적 대응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우 패턴도 짧은 시간에 매우 강한 비가 집중되는 특성을 보인다”면서 “극한 호우 등으로 인한 최근 3년간 피해액은 1조6000억원이 넘고 인명 피해도 85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장관 설명과 달리 최근 발생한 홍수 피해 대부분은 물그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에 마련된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탓에 발생했다. 충북 오송 궁평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교량공사 과정에서 제방을 임의로 허물었다가 미호강 물이 넘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섬진강 홍수 피해도 모두 제방이 건설되지 않은 곳에 집중됐다. 극한 호우가 내려도 기존 규정을 잘 지키고, 시설 관리만 잘한다면 토목사업을 벌이지 않더라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호우대비용? 최근 홍수 발생지역과 동떨어져”
전문가들은 환경부 발표대로 댐을 짓더라도 홍수 예방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홍 중앙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홍수가 발생한 지역과 새로 댐이 지어지는 지역이 동떨어져 있다”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환경부가 저수용량 2200만㎥ 이하의 작은 댐들을 만들면서 “극한 호우 대비용”이라 설명하는 것 역시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총저수용량이 1000만㎥를 넘는 홍수조절용 댐은 회야강댐(2200만㎥)과 감천댐(1600만㎥)뿐이다. 김 교수는 두 댐을 포함해 용두천댐(160만㎥), 고현천댐(80만㎥), 가례천댐(490만㎥), 옥천댐(230만㎥), 병영천댐(190만㎥) 모두 “기후위기에 따른 물그릇 확보”라는 명분에 비해선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홍수 관리를 통한 국민 생명 보호를 명분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서 기업이 쓸 용수를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강원 양구 수입천 댐 부지를 보면 워낙 시골이라 주변에 홍수 침수 위험이 있는 마을이 없다”면서 “반도체 공장이 쓸 용수 공급을 위해 다목적 댐을 짓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입천 저수용량은 1억㎥로, 신규 건설 예정 댐 중 가장 크다.
댐 건설이 정부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애쓰고 있는 상황에도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댐 건설과정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중장비가 수년에 걸쳐 공사장에 투입되며,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시멘트도 대량으로 쓰인다. 물길이 막히면 댐에 녹조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는데, 죽은 녹조는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메탄가스를 내뿜는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큰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댐 건설 과정에서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가 수몰, 파괴되기 때문에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댐을 짓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홍근·김기범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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