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갓현대차, 이 나라서도 국민기업”...26년간 공들이더니 드디어 일냈다

박소라 기자(park.sora@mk.co.kr), 문광민 기자(door@mk.co.kr), 박제완 기자(greenpea94@mk.co.kr) 2024. 7. 30. 20: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싸고 작은’ 해외차 전략에 맞서
집요한 현지화·R&D 통큰 결단
SUV 크레타 단숨에 국민차로
현대차그룹 점유율 20% 질주
연간 판매 100만대 3년내 돌파
인도·日 합작사 장악한 시장서
지분 100% 현지법인으로 승부
현대자동차 인도 첸나이 공장에서 제작 중인 현대차 차량들. [사진 = 현대자동차]
‘인도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인도인이 되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현대자동차가 인도를 처음 공략했던 1990년대 중반, 현지에서 ‘현대(Hyundai)’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재원이 정부 사람을 만나 현대(Hyundai)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 혼다요?(What? Honda?)”라고 되물었다.

현대차는 인도 공략을 위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짰다. 브랜드 인지도가 전무한 이 시장에선 오직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판단이었다.

현대차는 인도인이 가장 선호하는 게 무엇인지 집중했다. 당시 인도 내 모든 해외 완성차 기업은 본국에서 팔던 ‘싸고 작은 차’를 가져다 파는 관행이 있었다.

현대차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인도 소비자를 기존 제품에 끼워 맞추지 않았다. 빈 도화지를 펼쳐 현지인이 좋아하는 디자인·기능·사양으로 새 그림을 그렸다. ‘인도인만을 위한 세상에 없는 신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첫 전략 모델인 상트로부터 누적 100만대를 팔아 ‘인도 국민차’에 등극한 크레타 모두 현지화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인도 현대차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 현대차그룹]
기아 사장을 지낸 후 퇴임한 박한우 현대차 전 인도법인장은 “현지인에게 ‘오직 인도 사람을 위한 차’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면서 “자국에 팔던 저렴한 차를 인도에 가져다 판 업체와 크게 구별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차 개발에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하다. 오너 결단이 필수다. 소형차가 거의 없던 현대차로선 플랫폼부터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힘을 실어줬다. 그의 결단으로 현대차는 2006년 인도 하이데라바드 지역에 해외 법인으로선 드물게 현지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임흥수 전 현대차 인도생산법인장은 “우리나라와 운전석 위치부터 모든 것이 다른 현지 사정을 반영한 신차가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신차는 주재원들이 인도 주요 4개 도시를 돌며 현지인과 똑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면밀한 시장 분석 끝에 탄생했다. 당시 “현대차 직원은 일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까지 회자됐다고 전직 인도 주재원은 전했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30분 만에 60도였던 실내 온도를 23도까지 떨어뜨리는 차, 큰 키에 터번까지 쓴 현지인을 위해 천장을 높인 차,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엔진에 영향 없는 차, 물 웅덩이를 잘 피하는 차 모두 ‘인도인 그 자체’가 되지 않는 한 탄생할 수 없었다.

절실한 노력은 달콤한 결과로 돌아왔다. 현대차가 진출하기 전 인도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특정 업체의 독점 구조였다. 인도 국영 기업 마루티와 일본 스즈키의 합작사인 마루티스즈키가 점유율 80%까지 차지했던 시장이었다.

현대차가 인도에 뛰어 든 후 판세가 달라졌다. 마루티스즈키의 점유율이 떨어졌고 현대차는 그만큼 치고 올라갔다. 뒤늦게 인도에 진출한 기아도 경쟁력 있는 신차를 잇따라 투입했고 2019년 인도에 진출한 지 5년 만에 누적 판매 100만대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의 점유율(20%)은 1위 마루티스즈키(41.3%)의 절반까지 따라붙었다. 같은 기간 세계 1위 도요타의 인도 점유율이 6.4%에 그치는 점과 비교하면 현대차그룹의 인도 돌파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는 3년 내 인도에서 연간 100만대 판매를 돌파할 것이 유력하다. 지난해 현대차는 인도에서 약 60만대, 기아가 25만대의 차를 판매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내년까지 인도에서 현대차와 기아 합산 총 150만대의 생산 능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GM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면서 빠르게 생산 능력을 확대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현대차·기아가 단일 국가에서 연간 판매 100만대를 달성하게 되면 한국, 미국, 중국에 이어 4번째가 될 전망이다.

서보신 전 현대차 인도법인장은 “현대차그룹은 잘 팔린 차종의 생산 가능 대수를 단기간에 늘릴수 있는 독보적인 생산 기술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차 인도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인도 전략 차종 생산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현대차그룹]
현대차 인도 법인의 빠른 의사 결정구조와 공기(건축에 소요되는 시간)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차가 인도 첫 생산 기지인 첸나이 공장을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7개월이다. 첸나이에서 포드가 현대차보다 먼저 착공했지만 현대차의 완공이 훨씬 빨랐다. 90년대 말 현대차가 캐나다 브루몽 공장을 철수하면서 이곳에서 썼던 여러 대형 장비를 인도로 가져와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인 점도 한 몫했다.

빠른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든 것도 성장에 힘을 보탰다. 현대차는 일본 스즈키와 달리 인도에 진출할 때 합작사를 세우지 않았다. 합작사는 의사 결정이 느릴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현대차의 이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전 고위임원은 “1990년대 당시 인도는 최근의 중국처럼 외국 기업이 진출할 때 현지 회사와 합작사를 만들도록 강요했다”며 “현대차는 현지서 만든 차를 수출하고 많은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협상력을 발휘해 지분 100% 회사를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민 브랜드’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도 침투 전략의 일환이다. 현대차를 아무도 모르던 1990년대 중반, 회사는 ‘인도의 안성기’로 통하는 영화배우 샤룩 칸을 삼고초려 끝에 모델로 기용했다. 흔한 스캔들 한번 없는 그는 20년 넘게 현대차 인도 공식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샤룩 칸이 등장한 광고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재밌게 구성돼 연이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산림 보전, 교육격차 해소 등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