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62살 재고용이 던진 질문들 [아침햇발]
황보연 | 논설위원
우리는 몇살까지 일해야 할까? 혹은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그간 법원은 노동자가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를 판례로 정해왔다. 사고로 숨지거나 부상을 입은 피해자가 마땅히 얻을 수 있었던 장래소득을 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5년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숨진 ㄱ군의 가족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운영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은 사망 당시 4살이었던 ㄱ군이 군 복무를 마친 뒤부터 60살이 될 때까지 도시 일용노동 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2019년 대법원은 ㄱ군이 일할 수 있는 나이를 65살로 상향 조정했다. 높아진 기대여명과 실질 은퇴연령, 고령자 취업자 비중 등이 고려됐다. 앞서 1989년 대법원이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기존 55살에서 60살로 올린 지 30년 만의 일이었다. 판례가 곧바로 일터의 정년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법정을 벗어나면 논의는 한층 복잡해진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숙련 재고용’ 확대가 산업계 안팎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현대차는 2019년 노사합의로 60살 정년 이후 본인이 원할 경우 1년 더 촉탁계약직으로 일하도록 한 바 있다. 이달 중순 마무리된 임금협상에서 이를 62살까지 가능하도록 1년 더 늘린 것이다. 해마다 기술직(생산직) 등에서 2천명 이상이 정년을 맞고 있는데, 1964년생부터는 최장 2년간 퇴직 뒤 재고용이 가능해졌다. 대신 임금은 신입사원 수준으로 깎인다.
이번 합의는 고령인력 활용을 위한 새로운 ‘실험’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은 정년연장을 둘러싼 노사 간 힘겨루기 속에 나온 ‘임시방편’에 가깝다. 최근 몇년간 정년연장은 임단협에서 노조의 핵심 요구 가운데 하나였다. 2016년부터 정년 60살이 법적으로 보장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년연장 요구가 거센 것은 국민연금 수급연령과의 불일치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은 60살에서 차츰 높아지고 있다. 1969년생 이후로는 65살부터 받기 때문에 최대 5년간의 소득절벽이 생긴다. 정년연장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지만 회사 쪽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에 노사의 이해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재고용이다.
재고용은 단기적인 해법이 될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언제 독이 될지 모른다. 일찌감치 65살까지 고용보장을 강제해온 일본에서도 대부분 기업들의 선택은 계약직 재고용이었다. 기업들이 정년연장과 정년폐지, 계속고용(재고용·근무연장 등)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해온 탓이다. 결과적으로 ‘계약직에 대한 선호가 고령자의 근로조건 악화와 함께 근로의욕을 저하시켰다’는 문제가 일본에서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다고 한다.(국회 입법조사처) 이미 고령 노동자의 임시직 비중이 다른 나라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최근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한다며 거들고 있지만, 대기업 울타리 바깥의 대안으로 확장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안고 있다. 당장은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단위에서만 제한적으로 도입될 여지가 크다. 실제로 케이티(KT)나 크라운제과 등이 정년 뒤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바 있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곳들도 모두 규모가 큰 기업들이다.
반면 55~64살 전체 취업자로 넓혀서 보면, 명문화된 정년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의 평균 연령은 49.4살에 그친다.(2024년 5월 통계청 고령층 부가조사 기준) 그만둔 사유가 ‘정년퇴직’이라고 한 비중은 9.3%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문을 닫거나 인력을 줄이면서 비자발적으로 밀려난 경우다. 주된 일자리를 일찍 떠날수록 심각한 임금 감소를 동반하게 된다. “정년퇴직자의 소득공백이 정년 이전 조기퇴직자의 빈곤위험보다 시급한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한요셉 KDI 연구위원)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시 질문. 우리는 몇살까지 일하고 싶은가? 55~79살 고령층에 물었더니 무려 73.3살(평균)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한해 전 조사에서보다 올랐다고 한다. 이미 이들의 고용률이 60%에 육박하지만,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공적연금 도입의 역사가 길지 않아 노후소득이 빈약하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년연장을 위한 논의는 이처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 최대한 오랜 기간 머무르도록 하는 정책부터 좀 더 정교하게 나와야 한다.
whyno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유도 이준환, 세계 1위 누른 값진 동메달…“두번째 올림픽 땐 금 딸 것 ”
- 인터파크·AK몰도 정산 중단…큐텐 사태 전방위 확산
- 신유빈-임종훈, 12년 만의 귀한 동메달…유승민 협회장 ‘벌떡’
- ‘빵집 청문회’ 이진숙 오늘 임명 수순…‘2인 체제’ 방통위 재시동
- 민주당 “세관 마약수사 외압 실체는 대통령실…일선 경찰 좌절” 주장
- 미정산 대금 1조설 구영배 “동원자금 최대 800억…도와달라”
- [단독] 대통령실 ‘윤, 김건희 명품백 신고 안 했다’ 검찰에 회신
- ‘시청역 역주행’ 운전자 구속영장 발부…“도주 우려”
- [단독] 임성근 ‘명예 전역’ 신청…면죄부에 수당까지 챙기나
- [단독] 정신병원 ‘다인실’ 손발 묶여 맞아죽은 다음날, 다른 환자 또 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