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견물생심(見物生心)

신한춘 부산시 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 2024. 7. 3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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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보면 갖고픈 본성, 발전·진화 원동력 되기도
도리에 맞게 욕심 부려야 다함께 행복 누릴 수 있어
신한춘 부산시 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사자성어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괜찮은 물건을 보면 반드시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좋은 물건을 보면서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물을 구분할 줄 모르거나 정신박약이거나 아무튼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원초적인 본능으로는 견물생심이 맞다. 그러나 견물의 그 물건 중에는 취할 것이 있고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므로 그 물건의 성격과 상관없이 본능에 따라 무조건 견물생심(취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그 물건이 명백한 남의 것도 있고, 장물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상당한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취득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감정과 이성의 불균형을 초래할 때 견물생심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눈앞에 이득(취득, 소유 등)이 있을 때는 먼저 옳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비록 눈앞에 큰 이득이나, 탐나거나 좋은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의롭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나면 결코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물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그것을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연히 많은 돈이 든 가방을 발견했을 때 못 본 척 지나쳐 가거나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면 그만인데 견물생심의 본능에 따라 이를 탐내어 취득하게 되면 명백한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돈이 아니라도 소유자가 잃어버리거나 잠깐 잊어버린 귀중품을 몰래 취득하는 것은 법률적 용어로는 ‘점유이탈물횡령’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명백하게 소유자가 있는 돈이나 귀중품을 그 소유자 몰래 훔치는 경우는 ‘절도’가 되고 돈이나 귀중품을 그 소유자를 협박해 강제로 빼앗아 가로채는 것은 ‘강도’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견물생심은 사자성어이지만 고사성어는 아니므로 견물생심에 관련된 재미있는 옛이야기는 없다. 다만 비슷한 고사성어로 ‘득롱망촉(得隴望蜀)’이 있어 소개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득롱망촉’은 농 나라를 얻고 나니 내킨 김에 촉나라를 뺏어서 갖고 싶다는 말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득롱망촉’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가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쪽으로 진격해 촉나라 북쪽에 붙어있는 농 나라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그러자 조조의 군사인 사마의가 말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까지 뺏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조조는 “사람이 만족하기는 쉽지 않아. 이미 농 나라를 얻었으니 촉나라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야”라고 말했다.

당시 농 나라를 수중에 넣는 동안 군사들이 너무 지쳤고 또한 지친 원정군이 농성을 하는 유비의 토박이 군대를 쳐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므로 자칫 욕심만 앞서서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다가는 오히려 패배라는 처참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음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조조 사후 왕권을 아들이 물려받았지만 군사이자 책사였던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황제를 겁박해 왕위를 찬탈하고 국호인 위(魏)를 진(晉)으로 바꾸고 나서 오나라를 굴복시키고 천하 통일하게 된다. 이것은 권력이나 재물, 나라 등이 주관적인 자기 욕심만 부린다고 다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에게 주어진 제반 주위 환경은 물론, 하늘과 인심의 도움이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어쩌면 불가사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사람이 가진 그 욕심이 원동력이 돼 사회나 개인이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더 잘나고 싶고, 더 잘 살고 싶고,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살고 싶고, 더 많이 가지고 싶고, 오래오래 살고 싶고, 더 건강해지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고…. 욕심이야말로 사람이 발전하는 원동력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몇 해 전 우리에게 비움과 무소유 그리고 텅 빈 충만이라는 교훈을 남기고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더라도 도리에 맞게, 분수에 맞게, 남의 원망을 듣지 않게, 부작용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반드시 내 눈에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래야만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더불어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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