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93> 돌 틈 사이에 피어나는 패랭이꽃을 읊은 고려 때 정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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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붉은 모란꽃을 좋아하여(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뜰 안에 가득 심고서 가꾼다네.
황량한 들판에 피는 패랭이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패랭이꽃도 계속 피어있었지만 필자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하지만 패랭이꽃도 예전만큼 눈에 많이 뜨이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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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붉은 모란꽃을 좋아하여(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뜰 안에 가득 심고서 가꾼다네.(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누가 알리오, 황량한 들판에(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역시 예쁜 꽃떨기가 있는 것을(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빛깔은 마을 못의 달에 비치고(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향기는 언덕 나무의 바람에 전하네.(香傳隴樹風·향전롱수풍)/ 땅이 외져 찾는 도련님들 드물어(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아리따운 자태 촌로에게나 사랑받네.(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위 시는 고려 시대 문사인 정습명(鄭襲明·1094~1150)의 ‘패랭이꽃’(石竹花·석죽화)으로, ‘동문선’ 권9에 수록돼 있다.
사람들은 예쁘고 귀한 꽃을 좋아한다. 뜰 에 복과 재물을 부른다는 모란꽃을 심고 가꾼다. 황량한 들판에 피는 패랭이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패랭이꽃도 꽃떨기가 예쁘고 향기도 있으나 찾는 사람이 드물다. 패랭이꽃의 아름다운 자태는 밭에서 일하는 촌로에게나 눈길을 받는다고 읊고 있다.
패랭이꽃을 한자로 석죽화라고 한다. 돌 틈에 피어나는데, 대나무 같은 줄기를 가진 꽃이라는 것이다. 왜 패랭이꽃이라 불릴까? 꽃을 뒤집어 보면 보부상 등이 쓰던 패랭이와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바위틈뿐만 아니라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오늘 아침 목압서사 담장 밖 길가 자그마한 화단을 손질하다 패랭이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그 화단에 피었던 접시꽃 나리꽃 등에만 눈길이 갔다. 패랭이꽃도 계속 피어있었지만 필자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가끔 화개골의 펜션 등에 들른다. 그런 곳에 예쁘고 아름다운 외래종 꽃이 많다. “꽃이 예쁩니다. 무슨 꽃입니까?” 물으면, 뭐라 하는데 이름이 어려워 외우질 못한다. 그런데 펜션으로 오가는 주민들 집 담장 밖에 패랭이꽃이 피어있다. 하지만 패랭이꽃도 예전만큼 눈에 많이 뜨이지 않는 것 같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조선 시대 김홍도의 그림 ‘노란 고양이 나비를 희롱하다’(黃猫弄蝶·황묘롱접) 배경에 패랭이꽃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세상 이치가 이런 것인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흔하면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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