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파일럿’ 조정석
- 실직 ‘스타 파일럿’ 재취업 위해
- 여동생 신분으로 위장한 이야기
- 한준희 감독, 2년 전 작품 제안
- ‘헤드윅’서 한 여장과 결 달라요
- 촬영 전 화장·헤어 다양한 시도
- 하이힐 질주신 뒤엔 극심한 통증
- 남매로 함께한 한선화 찰떡 호흡
- 극중 아빠인 캐릭터에 깊은 공감
- 촬영 없으면 항상 딸과 놀아줘요
2019년 여름 영화 ‘엑시트’로 큰 웃음을 주며 942만 관객을 모았던 조정석이 5년 만에 다시 극장가를 접수하러 돌아왔다. 이번에는 여장을 한 1인 2역 코미디 영화 ‘파일럿’(개봉 31일)으로, 무더위에 지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석은 “개봉을 앞두고 설레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다.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파일럿’은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한 성희롱 발언 때문에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여성으로 변장한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다. 조정석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항공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동생 신분으로 여장을 시도해 위장 취업에 성공한 한정우 역을 맡았다. 그는 예측 불가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발랄한 조정석표 코미디 연기로 종횡무진한다.
“코미디는 엉뚱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조정석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못 웃긴다고 대역죄인이 되는 건 아니고, 다시 찍으면 되니까. 우리 모두 좋은 결과물을 위해 달려갔고, 그중 좋은 것만 담긴 것 같다”며 상황의 웃음이 많은 ‘파일럿’에 자부심을 보였다.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영화’라는 말을 듣는 ‘파일럿’에 대한 이야기를 조정석에게서 들었다.
▮여장에 도전한 조정석
‘엑시트’ 이후 충무로 섭외 1순위였던 조정석은 이후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와 ‘세작, 매혹된 자들’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높여갔다. 그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안한 이는 영화 ‘뺑반’에서 호흡을 맞춘 한준희 감독으로, 한 감독은 ‘파일럿’을 기획했다. 조정석은 “2년 전 부산에서 한 감독님을 만났다. 한 감독님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참여하느라, 저는 촬영차 부산에 있었는데 그때 ‘파일럿’을 제안하셨다”고 떠올렸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조정석은 읽어 내려갔다. 그는 “정말 재밌더라. 시나리오를 읽으며 조정석이라는 인물이 한정우에 잘 대입됐다”며 자신이 여장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됐음을 밝혔다.
뮤지컬 ‘헤드윅’을 통해 여장을 한 경험이 많은 조정석이지만 ‘파일럿’의 여장은 결이 완전히 달랐기에 또 다른 도전이었다. 조정석은 “처음에 여장을 했을 때 분장팀도, 의상팀도 뭔가 아쉬워했다. ‘좀 더 할 수 있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분장과 의상 테스트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흘 정도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할애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긴 머리도 해보고, 쌍꺼풀 테이프도 붙여봤는데 모두 탈락했다”며 “그렇게 노력해 완성된 것이 지금 모습이다”고 만족해했다.
여장을 위해 7㎏ 감량한 조정석은 100여 벌 의상 피팅을 했으며,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을 위해 수십 개 파운데이션 테스트를 거쳐 가장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방법을 찾았다.
‘파일럿’의 여장한 조정석 모습을 보고 여배우 박보영이나 최강희를 닮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두 분을 닮았다 하니 영광이다. 진짜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는데, 기사화까지 되니 두 분께 너무 죄송하다”며 “지나가며 스치듯 봐야 두 분 느낌이 있다”고 거듭 ‘미안’해했다.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여성스럽게 변해야 했다. 그는 “목소리 톤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생각났다”며 “뭔가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막 변형해서 낸다는 건 아예 생각을 안 했다. 제 목소리에서 최대한 하이톤 음역대를 많이 쓰려 했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그런 목소리를 가진 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분장하고, 의상 입고, 목소리 톤 변화를 줘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정석은 “의상을 입었을 때는 이너웨어부터 느낌이 달랐다. ‘헤드윅’을 한 경험이 있어 생경하진 않았지만 촬영 시간이 길어지니 좀 힘들긴 하더라”며 여장을 하고 하루 종일 계속 있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파일럿’에서 초반에 하이힐을 신고 대로를 전력 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정신없이 뛸 때는 잘 몰랐는데 뛰고 나니까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운동선수들 햄스트링이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며 “하이힐 신고 무척 고생하며 육교 계단을 뛰어올랐는데 이 장면은 편집됐다”고 아쉬워했다.
여장뿐만 아니라 파일럿이 되기 위해 비행기 조종 교육도 받았다. 조정석은 “파일럿 역을 맡은 신승호 이주명 씨와 진짜 파일럿분들을 만나 비행기 조종 교육을 받았다. 조종석에 앉아서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후배들과의 호흡
‘파일럿’이 ‘조정석의 원맨쇼’라는 말을 하지만 코미디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건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출신인 두 여배우와 호흡이 중요했다.
먼저 한정미와 함께 입사해 든든한 동료이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돼주는 파일럿 윤슬기 역의 이주명과는 감정 연기가 중요했다. 조정석은 “저보다 이주명 씨 연기가 엄청 힘든 연기였다고 생각한다”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출연한 이주명 씨 연기가 너무 좋았다. 연기가 좋아 눈에 띄는 후배가 있는데, 실제 만나서 그 사람의 인성을 느끼면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는 인성과 연기는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인성이 연기에 묻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며 이주명의 연기뿐만 아니라 인성도 칭찬했다.
또한 한정우의 여동생이자 ASMR 뷰티 유튜버 한정미는 위기에 빠진 오빠를 위해 기꺼이 자기 신분을 빌려주는 인물로, 한정미 역을 맡은 한선화와 조정석은 현실 남매 케미를 보여주며 큰 웃음을 준다. 조정석은 “한선화 씨는 ‘파일럿’으로 처음 만났는데 ‘왜 이제야 만났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한선화 씨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기분 좋았다. 초반부터 오빠 동생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져야 영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호흡이 좋았다”고 한선화와의 남매 호흡에 만족감을 표했다.
▮아빠 조정석
‘파일럿’에서 위기에 빠진 한정우가 여장을 해서라도 취업하려는 이유는 자신의 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다. 가수 거미와 결혼해 다섯 살 딸을 키우고 있는 실제의 조정석은 그런 한정우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그는 “한정우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서 여장을 택한다. 그런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만일 한정우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저도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장한 한정우를 같은 아빠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빠 조정석의 삶에 대해 곁들였다. 그는 “딸이 태어나고 100일까지는 육아를 열심히 했다. 이후 계속 작품을 하며 너무 바빠져 주 양육자가 거미 씨였다. 그래서 촬영 없는 날이면 아이와 미친 듯이 재미있게 놀아주려고 한다. 아이와 놀아줄 때 한 마리 곰이 되고 공룡이 되고 외계인이 된다. 최선을 다해 딸을 웃기는데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제 개그에 대한 딸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딸바보의 미소를 지었다.
조정석은 오는 8월 두 작품으로 대중과 만난다. 1979년 대통령 암살 사건 재판을 다룬 영화 ‘행복의 나라’(개봉 8월 14일)와 자신의 가수 데뷔 프로젝트인 넷플릭스 예능 ‘신인가수 조정석’(공개 8월 30일)이다. 여름에 출연작이 집중된 것에 대해 그는 “‘생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면 너무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재미있고 즐겁다. 바쁘게 지내는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스크린이든, 드라마든, 무대든 계속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며 좋은 연기로 만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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