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장 강화가 맞다…생산성 향상에 개혁 방점을”
- 36년 전 보험료율 3% 현재 9%
- 소득대체율은 70%서 40% 급감
- 노인 1000만 시대에 저출산까지
- ‘전국민 노후보장 목표’ 의구심도
- 수익 낮은 퇴직연금 사실상 실패
- 정부 바뀔때마다 연금 개혁 외쳐
- 전문가들 “지급 불가론은 기우”
- 고령화보다 생산성 속도 빠르면
- 전 연령층 물질적 생활수준 개선
‘국민연금의 미래가 다가온다. 기금 고갈’ 20년 전인 2004년 온라인에 떠돌던 패러디 포스터다. 당시 합계출산률 1.164명을 기록하자, 저출산 때문에 기금이 곧 소진된다는 우려가 높았다.
지난해 합계출산률이 0.72명까지 내려갔다. 연금 수령자인 노인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은퇴하고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퍼지면서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국민연금 역사는 겨우 36년이다. 불과 한 세대도 연금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국민 상당수가 곳간 문을 열기도 전에 거덜 날 걱정부터 해야 하는 셈이다. 여전히 국민연금은 대다수 서민의 최고이자 최후의 노후보장 수단이다. 죽을 때까지 물가와 연동돼 지급되는 연금을 민간 보험회사 금융상품에서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만약 있더라도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빈곤한 노인도 많다. OECD 연금보고서(Pensions at a glance 2023)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4%(66살 노인 가운데 가처분소득이 전체 인구 기준중위소득의 50% 이하인 비중)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후 보장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3차 개혁이 필요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진다. 국민연금, 과연 안녕할까?
▮쪼그라지고 또 쪼그라졌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 노후 보장을 목표로 1988년 시행됐다. 당시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했다. 납부 금액은 적은 반면 혜택은 너무 많다 보니 개혁을 거쳐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늦게 덜 받는’ 1차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연금 받는 나이는 60세에서 65세로 늦춰졌고, 소득대체율은 70%에서 60%로 낮아졌다. 개혁은 바로 다음 정부에서 또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보험료율을 9%에서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내리는 2차 개혁을 추진했다. 국민 저항에 부닥치자, 보험료율은 9%로 유지하되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으로 내리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도 정권 초기부터 연금개혁을 ‘개혁 과제’로 내세웠다. 이에 21대 국회는 2022년 7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1년간 개혁 방안을 연구한 끝에 지난해 11월 16일 최종 보고서를 통해 소득보장 강화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과 재정안정 강화안(보험료율 15%·소득대체율 40%)을 제시했다. 500명으로 꾸려진 시민대표단은 소득보장 강화안과 재정안정 강화안을 두고 한 달간 토론을 벌여 ‘더 내더라도 더 받는’ 소득보장 강화안(56%)을 지지했다. 정치권·학계·시민사회가 나서 21대 국회 막바지까지 논쟁을 이어갔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각 정부가 연금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은 줄고, 고령화로 받는 사람은 늘어나자 기금 고갈 시점이 다가온다. 지난해 발표한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2055년이면 연금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선사한 혜택을 누린 국민은 아직도 비교적 소수다.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55~79세 노인 가운데 공적연금 수령자는 50.3%다. 이 중 44.6%는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한 연금 수령액이 25만~50만 원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이 3년 전 추산한 최소 월 노후 생활비(124만3000원)의 반도 안 되는 돈이다. 10만~25만 원인 이들도 6%나 됐다.
▮실패로 돌아간 퇴직연금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이 어렵다고 판단해 2004년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일시금을 받는 게 아니라, 연금형태로 받는 제도다.
문제는 ‘연금’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전혀 못 한다는 점이다. 우선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장치로 작동하려면 은퇴자들이 연금 형태로 수령해야 하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는 비율은 2020년 3.3%, 2021년 4.3%, 2022년 7.1% 등으로 올랐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 53만 개 중 연금을 선택한 계좌도 10.4%에 그친다.
수익률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최근 5년과 10년간의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에 그쳤다. 1988년 이후 국민연금 연평균 수익률이 5.92%로 6%에 육박하는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엔 13.59%에 달하는 잠정 수익률을 기록해 종전의 최대 수익률인 2019년(11.31%) 기록을 넘어섰다. 실제로 얼마 전 퇴직 후 IRP 계좌를 해지한 장용익(47·연제구 연산동) 씨는 “물가상승률 언저리인 데다, 정기적금보다도 수익률이 낮다. 해지 후 대출금을 상환했고, 나머지는 은행에 예금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이른바 ‘가성비 높은 금융상품’으로 꼽힌다. 대부분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이들이지만, 월 100만 원 이상 수령하고 있는 사람은 빠르게 늘어 지난해 기준으로 68만7183명에 달한다. 부부가 함께 받고 있다면 2인 가구 최저생계비(월 207만 원)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사망하는 시점까지 계속 지급받을 수 있는 종신연금이다. 물가가 오르면 금액도 조금씩 늘어난다. 노후 준비 방법으로 국민연금을 선택한 국민의 비중은 2013년 48.9%에서 2023년 59.1%로 20%P 이상 증가했다.
▮“연금 고갈론 공허…생산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지급 불가론이 기우에 가깝다며, 노인과 청년세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부경대 김종호(경제학부) 교수는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편이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본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을 통해 최소한의 노후가 보장되는 수준까지는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며 “소득대체율은 더 올려야 한다. 혜택은 현재의 청소년층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 사적연금은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것이다”고 했다.
이어 “연금 수급자가 많아지고 급여액이 증가하면 노년층의 소비도 증가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 국회와 정부는 정치적 득실을 따지며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해야 하는 의무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경성대 전용복(국제통상무역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 논의가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생산세대가 은퇴세대를 일방적으로 부양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구축한 생산 수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생산하고 은퇴세대는 그에 대한 공헌을 보상받는다”며 “은퇴세대가 실제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재화와 서비스다. 생산성이 올라가야 이런 ‘실물 자원’이 확보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령화 속도보다 생산성 향상 속도가 더 빠르면, 미래 생산세대와 은퇴세대 모두의 물질적 생활 수준이 개선된다. 그러나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에 집착해 세금의 성격인 보험료를 과도하게 징수하면, 국민이 소비를 줄여 내수가 쪼그라들고 기업 투자도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영상= 김채호 김태훈 김진철 박혜원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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