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정산대금 끌어다 쓴 구영배, 미정산 위험 알고도 손놓은 금융당국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큐텐그룹이 지난 4월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기 위해 티몬·위메프 판매대금을 끌어다 썼다는 의혹이 30일 사실로 드러났다. 구 대표는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지 22일만에 공개 석상에 등장했지만 구체적인 사태 수습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티몬·위메프의 미상환·미정산 위험을 인지하고도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직면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거듭 사과했다.
구 대표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에 쓴 위시 인수 자금 400억원은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아니냐’고 묻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위시를) 2300억원에 인수했지만 (실제) 들어간 자금은 400억원”이라며 “티몬 위메프까지 동원해서 차입을 했고 바로 한달 내에 상환했다”고도 말했다.
그동안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를 두고 물건을 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정산해줘야 할 금액이 위시 인수자금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를 구 대표가 시인한 것이다. 티몬·위메프는 고객이 낸 상품값을 전자결제대행(PG)사로부터 구매일로부터 두 달쯤 뒤에 판매자에게 지급해왔다.
5월까지 2134억원, 6~7월까지 합하면 총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금액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구 대표는 “가격경쟁 하다보니까 대부분 프로모션으로 쓰였다”고 했다.
구 대표는 이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지만 사태를 수습할 구체적인 방법은 내놓지 못했다. 그는 “그룹 내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800억원”이라면서도 “그 돈은 정산자금으로 바로 쓰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 사재를 얼마나 동원할 수 있냐’는 물음에는 “큐텐 지분을 38% 갖고 있다”며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내놓겠다”고 말했다. 큐텐그룹은 비상장 회사로 지분 가치를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상 미정산 피해자에게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큐텐 자금 추적과정에서 드러난 강한 불법의 흔적이 있어서 검찰에 주말 지나기 전에 수사의뢰를 해놓은 상태고 주요 대상자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 등 강력조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큐텐 측의 가용자금이나 외부로 유용된 자금이 있는지와 규모를 파악해 책임재산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 원장은 구 대표를 신뢰하기 힘든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기도 했다.
금감원과 공정위 등 당국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금감원이 티몬과 위메프의 미상환·미정산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형식적인 경영개선 업무협약(MOU)만 맺어두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금감원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개선협약서’에 따르면, 감독당국은 지난해 말 티몬·위메프에 “미상환·미정산 잔액에 대해 신탁, 보증보험 등을 통해 보호조치를 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도했다. 그럼에도 지도가 이행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 원장은 “회사가 응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경영개선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문제를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당국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정위 역시 이달 중순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이 처음 가시화됐을 때 ‘프로그램상의 정산오류’라는 사측의 거짓 발표를 믿고, 피해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저희가 (티몬 측 발표를) 일단 신뢰하고 그 이후에 모니터링했지만 현장 긴급 점검을 나간 것은 7월25일이었다”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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