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패러다임 뒤집는 수술방의 대가 "다친곳 흐르는 수돗물로 씻어야"

김경렬 2024. 7. 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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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식 경희의료원 성형외과 교수
흉터 완전히 없애는 것 불가능
재건성형·미용성형 분야 모두
몸·마음 치료해주는 의미 지녀
범진식 경희의료원 성형외과 교수.
범진식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경희의료원으로 여러차례 전화를 넣어서야 겨우 성형외과 범진식(63·사진) 교수와 연락이 닿았다. 어렵사리 경희의료원을 찾은 건 흉터제거에 대한 제대로 된 상식을 알리기 위해서다.

범 교수는 경희대 의과대학을 졸업,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부교수와 이화여대 목동병원을 거쳐 경희의료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흉터성형 분야에선 국내에서 손꼽는 명의로 정평나 있다.

범 교수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의학이 흥미롭다고 느꼈다. 성형외과의 거장으로 대학병원에서 숱한 경험을 쌓은 그의 탐구 열정은 아직 20대 청춘처럼 파릇파릇했다.

"흉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제거수술을 하면 또 다른 수술흉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첫 질문의 답이다. '흉터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들어보려는 기자의 질문은 어리석었다. 하지만 범 교수는 "흉터가 덜 생기거나, 눈에 잘 안 띄게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탈색된 흉터에 가짜 땀구멍을 만들어 흉터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한 그의 논문이 이런 이야기를 뒷받침 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질문을 고쳐 '이제 막 생긴 상처에서 흉터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물었다. 범 교수는 "상처 부위 피부는 먼저 흐르는 수돗물로 문질러 깨끗이 씻어야 된다"고 답했다. '세균 감염이 걱정된다'고 물었더니 "세균이 없는 흐르는 수돗물로 상처부위를 깨끗이 닦아줘야 감염이나 염증이 덜 생긴다"고 말했다.

'상처에 물이 닿으면 탈이 난다'는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설명이었다. 범 교수는 심하지 않은 여러 종류 상처들이 1~2달 동안 낫지 않았는데, 흐르는 물에 비누로 씻은 후 1~2주내 깨끗이 나은 사례를 제시했다. 수돗물 세척이 생리식염수 세척과 같은 감염예방효과를 보인다는 여러 논문들도 보여줬다.

이처럼 상처부위 치료는 수돗물로 씻거나 생리식염수로 닦는 것부터 시작한다. 범 교수에 따르면 이후 세균을 억제할 항생제 연고를 충분히 바르고 진물을 흡수할 수 있는 드레싱으로 덮어줘야 한다. 상처 주위 피부세균이 체온에서 진물이나 분비물을 먹고 증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는 상처치료의 두 번째 핵심이다.

포비돈이나 과산화수소수와 같은 소독약은 벗겨진 상처에는 피하는 게 좋다. 소독제는 세균뿐만 아니라 상처의 정상세포도 죽인다. 상처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따갑고 아프다. 상처 자체에 자극을 줘 오히려 흉터나 색소 침착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자극 없는 항생제 연고를 다음 치료 때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라주고, 거즈나 다른 드레싱으로 덮어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상처가 봉합됐다면 흉터를 벌어지게 하는 피부장력을 억제해야한다. '지렁이 흉터, 떡살'로 불리는 비후성 흉터를 예방하려면 상처가 모아진 상태로 2달 이상 유지해 콜라겐결합이 안정되도록 해야 한다. 상처 발생 2주 전후로 상처 바닥의 흉터가 심하게 수축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흉터가 뭉치거나 불규칙해질 수 있다. 이땐 마사지, 압박치료, 흉터주사를 이용해 흉터를 편평하게 풀어준다.

'이미 생긴 흉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제부턴 그가 집도한 수술 사례와 논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심하게 벌어져 있는 어떤 환자의 얼굴 흉터는 피부장력을 장기간 억제하는 수술기법과 수술 후 관리법을 통해 실금 흉터로 만들었다. '여타 흉터 성형술과 달리 결과가 크게 차이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범 교수는 "흉터가 안정될 때까지 장기간 피부장력을 억제하는 처치의 결과"라고 말했다.

손등 전체 심각한 화상 구축흉터(오그라드는 흉터)로 손을 사용할 수 없었던 환자의 사례에서, 범 교수는 모든 흉터를 걷어내고 손등 전체를 피부이식 했다. 수술은 단 한 차례. 이후 1주일 넘게 주먹자세를 유지해 기능과 모양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렸다. 또 다른 사례는 화상으로 귓바퀴에 거대한 켈로이드흉터가 있던 여성 환자에서, 흉터 전체를 제거하고 전층 피부이식으로 정상과 같은 귓바퀴를 만들었다. 정교한 재건성형이었다. 여러 차례 수술해야했던 기존 방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밖에도 범 교수의 대표적 연구분야는 안면골절, 선천성 귓바퀴 기형 등이다. 특히 안면골절 중 '안와파열골절' 논문은 새로운 골절 개념과 형태를 설명해 교과서와 다른 의학문헌에 236회 인용됐다. 안와골절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한 계기로 학계에서도 최고 연구로 꼽고 있다. '아랫턱(하악)골절 수술' 연구에서는 다발성 골절을 정확히 뼈를 맞추고 미세판으로 삼점 고정했다. 기존 필수처치였던 아래턱-위턱고정은 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음식을 먹고 양치질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오히려 환자가 편하고 상처회복도 빨랐다. 학계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범 교수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은 복잡 이주변형의 새로운 분류법과 수술적 치료방법, 귓바퀴 형성과정의 새로운 이론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재건성형분야 뿐만 아니라 눈, 코, 주름, 가슴수술 등 미용성형분야 모두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성형해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실력을 갈고 닦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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