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노란봉투법 [한겨레 프리즘]
박태우 | 노동·교육팀장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왜 필요한지 주위에서 물을 때마다, 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을 예로 든다. 하청 노동조합에 대해 원청 삼성이 대응한 모습을 보면, 노조법 개정 취지인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사업주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회사의 핵심 업무인 가전제품 설치·수리 ‘서비스’ 업무를 하청업체에 도급하고 있었다. 2013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을 설립하자, 삼성은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까지 동원해 노조 와해에 나섰다.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삼성과 경총은 노조가 하청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지연시키는 전략을 짰다. 여름철 성수기에 노조가 파업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하는데, 한 하청업체 대표는 그 공고문을 게시했다가 경총의 코치대로 떼기도 했다. 단체교섭을 고의로 지연시키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지만, 삼성의 도급비를 받아 서비스센터를 운영하는 하청업체는 삼성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삼성은 노조 조합원 수가 많은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기도 했다. 폐업 뒤 노동자를 다른 업체로 고용승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조 가입=실직’이라는 인식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이 기획폐업과 관련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사용자의 지위에서 하청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과 같은 취지다.
원청이 하청노조에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만,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까지 부담 지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삼성은 노조와 단체교섭을 실제로 했다. 경찰 정보관에게 뇌물을 준 뒤 대리인으로 내세워 노조와 비공식적인 교섭을 하고, 여기서 결정된 사항을 하청업체를 대리하는 경총과 노조와의 공식 교섭에서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이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삼성이었다.
경총은 노조법이 개정돼 원청사업주에게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를 지우면, “사용자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체교섭을 거부했다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하청업체의 영업 자유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경총 전현직 임직원 3명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에서 삼성과 공모해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다. 원청인 삼성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하고, 기획폐업을 통해 하청업체의 영업 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경총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삼성은 하청노동자 염호석씨가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자 경찰을 동원해 염씨의 장례가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지도록 유도하고 하청노조의 ‘극단화’를 비판하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이뤄지도록 했다. 그러나 하청노조의 투쟁이 극단화되는 이유는 노조를 만들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원청의 태도와 이를 방관하는 노조법에 있다.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사업주가 하청노조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하청노동자들도 헌법상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삼성 노조와해 사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노조와해 사건 관련자 대부분을 사면하고, 지난해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하청노동자들의 ‘진짜 사용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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