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짜고 쓰고 시고…눈물 맛, 인생의 맛
태어나자마자 세상이 망한 것처럼 격렬히 울어 젖히는 신생아는 아직 이것을 몸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신체적 기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주에서 몇 달이 지나야 아기들은 비로소 눈에서 닭똥 같은 이것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아기들은 이것으로 불편감과 불안감을 표시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간은 이것을 비언어적 언어로 사용한다.
눈물은 육지 포유류의 눈물샘에서 흐르는 투명한 액체를 가리킨다. 눈물은 세 가지로 나뉜다. 안구를 촉촉하게 하고 각막의 청결을 유지하면서 눈을 보호하는 ‘기본 눈물’, 양파나 파 따위를 썰거나 최루탄 연기가 눈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반사 눈물’, 기쁘거나 슬프거나 분노할 때 흘리는 ‘정서적 눈물’이 그것이다.
우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감정을 동반한 정서적 눈물에는 카테콜아민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성분이 들어 있다. 이 눈물은 유해한 성분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엔도르핀·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을 분비해 감정을 가라앉힌다. 엔도르핀은 ‘몸 안에서 분비되는 모르핀’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고 통증을 줄인다. 옥시토신은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유대감과 애정을 느낄 때 분비된다. 한의학의 견해도 비슷하다. 체액은 오장과 관련이 있고, 간에 화가 많은 경우 눈물은 화를 내려준다. 눈물은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라도 어릴 적 서러웠던 일들이 느닷없이 떠올라 힘겨울 때가 있다. 그런 이들에겐 표지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림책 ‘눈물 바다’(서현 지음)를 추천한다. 주인공 아이는 학교에서 시험을 망쳐서 기분을 잡쳤다. 짝꿍이 먼저 놀렸는데 억울하게 선생님한테 야단도 맞았다. 하교 시간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겨우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는 본체만체 싸우고나 있고, 저녁밥을 남겼다면서 혼쭐까지 났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아이가 훌쩍훌쩍 우는데 눈물은 어느새 바다가 되어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아이의 억울함도 깨끗이 씻어준다. 눈물 바다는 아이의 몸에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을 왈칵왈칵 분비해주었을 것이다. 울고 난 뒤 아이들이 스르륵 잠드는 이유다.
함민복 시인은 늙은 어머니가 식당에서 자신에게 뜨거운 국밥을 덜어주는 모습을 보며 ‘눈물은 왜 짠가’라는 감동적인 시를 썼지만 시인의 눈물은 짠맛보다 신맛과 단맛이 강했을 것이다. 짜디짠 눈물은 분노할 때 나온다. 교감 신경이 흥분하면서 도끼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에너지를 뿜어내야 하기 때문에 눈 깜박임이 줄고 눈의 수분도 증발하면서 눈물 속 나트륨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쁘거나 감격해서 나오는 눈물에는 염분 대신 포도당이 들어 있어 비교적 단맛이 난다.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은 산도가 강해 살짝 신맛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정서적 눈물은 인간만의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어령의 마지막 메모를 묶은 책 ‘눈물 한 방울’을 보면, 그는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눈물이라고 적었다. 낙타나 코끼리도 눈물을 흘리지만 인간처럼 정서적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근대적 지식 체계는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 ‘인간다움’의 여러 척도를 만들었고 인간이 동물보다 고등한 생물이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눈물을 꼽았다. 하지만 최근엔 동물의 눈물도 인간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코끼리도 공동체 구성원을 잃고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주인과 떨어져 있다가 재회한 강아지는 반가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연구 결과도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감정적 눈물이 인간만의 속성은 아닌 것으로 지식이 수정되고 있는 셈인데, ‘자연’을 종속적으로 지배하려 한 ‘인간’의 근대 이분법적 사고체계가 조금쯤 바로잡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식은 아직 인간의 눈물조차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 작품을 볼 때 흘리는 눈물이 대표적이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내건 침묵과 명상의 공간인 ‘로스코 채플’이 있다. 미술사가 제임스 엘킨스는 저서 ‘그림과 눈물’에서 “로스코 예배당은 눈물에 푹 절어 있는 곳”이라며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불가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 울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로스코는 비극, 고통, 종교에 연루된 사람이었고 그런 정서를 관객이 알아차렸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로스코 채플이 만든 “눈물범벅 세계”(엘킨스)는 이 세계의 은유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가 니나 시몬의 노래 ‘필링 굿’을 들으며 가득 고인 눈물 너머 바라본 세계, 이례적으로 예술영화관 객석을 가득 메운 한국의 중년 관객들이 마주한 자신의 세계 역시 눈물범벅이긴 마찬가지일 테다. 평생 열렬히 바라고 욕망했지만 끝내 모든 것이 덧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예외 없이 무상하고 ‘퍼펙트’한 공(空)의 세계.
예나 지금이나 눈물은 성별화된 체액이고, 울지 않는 것은 남자다움의 상징이었다. 여자는 감성, 남자는 이성의 영역에 고착하면서 이성이 우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슬픔의 위안’을 쓴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는 “슬픔에도 유리천장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우는 남자는 정서가 풍부하다고 인정받게 됐지만 여자의 눈물은 당연하다 여겨지거나 ‘애교와 함께 대남(對男) 심리전에서 사용하는 생화학 무기’(나무위키)라는 식으로 조롱받아왔다. 여자의 눈물 냄새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를 감소시켜 남성의 공격성을 약화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강도를 만나면 울어라’는 식의 어이없는 제목이 달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다른 성별이 흘린 눈물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런 성별 실험은 이뤄지지 않았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역사 이래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마다 여자는 남자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죽은 이들을 묻어왔다고도 했다. 고대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장례 때 주로 여성이 흘리는 애도의 눈물을 유리나 질그릇으로 만든 눈물 단지에 받아두었다가 고인과 함께 묻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한 눈물 단지는 뚜껑에 작은 구멍을 뚫었는데, 애도자들의 눈물이 모두 증발하는 건 애도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남북전쟁 때는 집 떠난 남편들을 위해 부인들이 병에 눈물을 담았다. 눈물 단지는 상실을 치유하는 애도의 의례 중 하나였던 셈이다.
2400년 전 소포클레스의 비극 속 안티고네야말로 ‘죽음 바라지’로 가장 유명한 여성이다. 그는 삼촌이자 국왕인 크레온의 금지 명령을 거슬러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애도했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 서사는 가부장적 권위를 거스르는 애도의 정치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는 공공연히 금지당했지만 그 때문에 가로막힌 국민적 정서는 더 큰 에너지가 되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던 것도 애도의 시효를 정부가 정하고 ‘애도 끝’이란 메시지까지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반발을 샀다. 사전에 사고를 막을 인력이 왜 부족했는지, 빗발치는 신고에도 왜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응급구조인력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는지 등은 아직 규명되지 않아 애도는 지연되고 있다.
눈물을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눈물은 자주 ‘악어의 눈물’에 비유된다. 악어가 먹이를 잡아먹을 때 먹잇감을 안쓰러워하는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역시 해당 대선 때 김건희 여사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도 ‘악어의 눈물’로 일컬어지며 정치적 공방이 오갔다. 거짓 눈물이라는 얘기다. 악어로선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작가 최인호가 세례를 받은 뒤 책상에서 기도하며 흘린 눈물 자국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나약한 인간이 신 앞에 서게 될 때, 부족한 나이지만 그대로 받아주길 간구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뉘우칠 때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기뻐서, 슬퍼서, 분노해서, 부끄러워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눈물의 맛이야말로 짠맛, 신맛, 쓴맛, 단맛이 모두 어우러진 인생의 맛일 것이다. 흘리기도, 멈추기도, 닦아주기도 참 어려운, 눈물.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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