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은 대가
정년이 지나면 연구 기회가 끊기는 고국을 떠나는 한국 과학자. 정부가 전용 병원을 세워 무병장수까지 챙기는 중국 과학자.
저출생 고령화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겹치면서 세계 각국은 인구절벽에 앞서 '인재절벽'을 맞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은 빈 자리가 당장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 역할에 맞는 실력을 갖춘 고급 전문인재의 빈 자리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공지능(AI)부터 반도체, 양자기술까지 세계 각국이 목숨 건 패권 경쟁을 벌이는 과학기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주요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마저 인구 감소의 영향이 시작했다. 특히 공과대학에 앞서 자연과학 계열은 이미 인재절벽이 현실화됐다. 여기에다 의대 증원으로 이공계 인력의 의대쏠림이 본격화되면 도미노 영향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람 귀한 줄 모른다. 많은 사회 시스템과 법제도, 정책이 그렇게 굳어져 있다. 이는 과학기술과 소프트웨어, AI와 같이 한 사람의 능력이 국가는 물론 글로벌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세계 주요 국가들에 비해 인구와 인재가 적은데, 수십년간 국가 자원을 투입해 키운 귀한 인재들마저 눈뜨고 떠나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정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타국에서 연구 터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6년 '국가 석학'으로 선정되고 201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이기명(65)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오는 8월 중국 베이징 옌치후 응용수학연구원(BIMSA) 교수로 옮긴다. 그는 우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초끈이론'의 대가로, 과학기술논문색인(SCI) 피인용 횟수가 2735회에 이르는 세계적 과학자다.
국가를 대표하는 석학들조차 정년이 지나면 연구 기회가 제한되는 한국과 달리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는 중국에서 남은 연구인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중국 연구기관들은 해외 연구자들에게 수억원의 정착금과 보수, 연구비 등을 제시하면서 나이에 상관 없이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연간 1000명의 해외 우수 인재를 중국으로 불러들인다는 '천인계획'의 일환이다.
이 부원장의 중국행이 가지는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낮아 보인다. 산업현장의 반도체 전문가 한 명이 떠났다고 하면 차라리 더 떠들썩했을까. 실력 있는 인재가 국가를 먹여 살리는 시대지만 한국의 인재 정책에서는 그런 절실함을 찾기 힘들다.
그에 비해 인구 14억의 중국은 적극적이다. 우리보다 훨씬 두터운 인재를 가지고도 해외 인재 영입과 있는 인재 지키기에 나라 전체가 매달린다. 해외 유학을 간 중국 인재부터 해외 노벨상 수상자까지 정착비와 연구비를 아끼지 않고 주고, 집과 차까지 지원한다. 뛰어난 인재들도 철저한 경쟁을 시키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국가가 평생 관리한다. 인재 정책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성(省)과 도시까지 나서서 국가 인재, 성 인재, 시 인재를 키운다. 인재를 키워 경제를 성장시켜야 승진할 수 있으니 공무원들은 목숨을 건다. 특히 중국 과학자 중에서도 최고봉인 '원사'들은 전용 병원까지 두고 건강을 챙긴다. 이들의 무병장수가 곧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차관급 대우를 받고 파격적인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이들이 우주, 양자, AI 같은 영역에서 미국 빅테크에 밀리지 않는 수준의 연구·개발(R&D)을 한다.
인재를 조금이라도 젊을 때 영입하기 위해 화웨이는 전세계에서 천재 소년을 영입하기도 한다. 나이와 학력·전공과 상관없이 과학기술 분야 천재들을 최고 201만위안(약 3억8000만원)의 연봉을 주고 영입해 키운다.
세계를 쥐락펴락할 인재를 공들여 키우고 죽을 때까지 관리하고 수명까지 챙기는 14억 인구 중국과, 그나마 적은 인재조차 제대로 키우고 지키지 못하는 5200만 인구 한국이 기술 패권경쟁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안 봐도 뻔하다. 눈앞에 뻔히 다가오는 미래를 눈감아선 안된다. 사람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다.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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