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는데 금메달, 적극적인 공격엔 반칙패...'노잼'으로 전락한 유도, 왜?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고도 반칙패로 은메달을 딴 허미미(경북체육회)의 결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유도가 여전히 심판 판정에 의해 결과가 좌우될 뿐만 아니라 잦은 규정 변경 탓에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어서다.
허미미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유도 여자 57㎏급 결승전에서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와 연장(골든스코어)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반칙패했다. 허미미는 정규 시간 4분 동안 지도 2개를 받았고, 데구치도 지도 1개를 받은 채 연장전에 돌입했다. 지도 3개를 받으면 반칙패를 당하는 터라 허미미는 업어치기, 안다리 걸기, 소매 틀어잡기 등 다양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반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인 데구치는 가만히 서서 허미미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연장전에서 데구치의 공격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심판도 데구치가 소극적인 경기를 한다며 지도 1개를 더 줬다.
하지만 연장 2분 35초가 지났을 때 심판은 허미미에게 반칙패를 판정했다. 그가 실제로 공격할 의도 없이 '위장 공격'을 했다고 보고 지도를 준 것이다. 그 순간 데구치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심판을 쳐다봤고, 경기장을 빠져 나올 때까지 자신이 금메달을 땄다는 걸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김미정 한국 여자 유도대표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심판 판정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감독은 "캐나다 선수는 공격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세 번째 지도를 같이 받았다면 납득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딴 데구치도 심판 판정이 석연치 않았음을 인정했다. 그는 결승전 판정에 대해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라며 "지난 3년 동안 유도는 많이 변했다. 지도 판정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지만 유도의 다음 단계를 위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도가 여전히 심판에 의해 승부가 갈린다는 점이다. 사실 유도계는 심판의 주관에 깊게 의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유도 남자 66㎏급 8강전에 나선 조준호는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를 3-0 판정승으로 이겼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0-3으로 완전히 판정이 뒤집혀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심판위원장의 개입으로 판정이 번복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판정승은 양 선수가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할 경우 주심 1명과 부심 2명의 의견으로 승부를 가리는 제도였다.
이 때문에 국제유도연맹(IJF)은 지난 2017년 규정 개정을 통해 '판정승'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작용이 계속되면서 유도계에선 득점 방식을 점수제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경기력과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규칙 변경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허미미에게 적용된 반칙패도 당초 지도 4개에서 3개로 바뀌었는데, 기술 없이 '지도 관리'로 승부를 낼 수 있어 악용되는 경우가 잦다. "현재 유도는 기술이 아닌 '지도 관리' 싸움"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이원희, 최민호 등 과거 유도 금메달리스트들이 선보인 화끈하고 시원한 한판승의 기술 유도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심지어 '다리 기술 금지'도 유도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2000년대 들어 힘을 바탕으로 하체를 잡아 메치는 기술로 유도계를 발칵 뒤집은 몽골 선수들의 약진에 규정이 변경됐다는 의혹도 있다. 일본의 입김이 셌던 IJF는 다리를 잡는 기술을 아예 금지시켰고, 몽골 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이 따랐다. 화끈한 기술 유도가 점차 사라지면서 '도복 입고 하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이라는 조롱도 나왔다.
결국 한국 유도가 올림픽 등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확실한 기술 구사"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재엽 동서울대학 교수는 "한국 유도가 국제 대회에서 다시 전성기를 맞으려면 세밀하게 유도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며 "한 가지 기술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기술들을 연마해 구사한다면 이 같은 의혹은 아예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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