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설득, 치우면 또 쌓아" 저장강박 사례관리 '진땀'

광주CBS 김한영 기자 2024. 7.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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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면 쌓이고, 치우면 쌓이는 저장강박 의심가구②]
사례관리 담당자, 관계 형성과 쓰레기 처리 반복하는 실정
조례 있지만 강제성 없고 실태조사 포함 안돼 실효성 의문
저장강방 지표, 자치구 의심 사례·강박증 환자 현황이 전부
최근 3년 강박증 환자 11만명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어
전문가 "저장강박 환자 늘어 통계와 연구 등 관심 필요해"
편집자 주
과도할 정도로 각종 물품 수집에 집착하는 저장강박 의심가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대부분 가족, 이웃 등과 단절된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지내고 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쌓아 놓은 물품으로 인해 각종 질병과 화재 등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광주CBS는 치우면 쌓이고, 치우면 쌓이는 저장강박 의심가구에 대한 실태를 짚으며 제도와 관련 대책을 모색해 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뚜렷한 해결책 없이 매번 문제가 반복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장강박 의심가구에 대해 보도한다.
광주 남구청은 최근 저장강박 의심가구를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 활동을 펼쳤다. 광주 남구청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쓰레기 더미에 대문서 잠을"…저장강박,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
②"겨우 설득, 치우면 또 쌓아" 저장강박 사례관리 '진땀'
(계속)

저장강박 의심가구가 사례관리 담당자들은 관계 형성을 위해 수개월 동안 공을 들여 겨우 쓰레기를 치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 다시 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설득에만 수개월…그저 악화하지 않기만 바랄 뿐

"모든 것을 줘도 마음 열기가 쉽지 않네요"

광주 남구의 동 행정복지센터 사례관리 담당자 A씨.

A씨는 저장강박 의심가구인 B씨를 찾아갈 때면 달콤한 커피를 비롯해 파스 등 각종 선물을 준비해간다. 그러지 않고선 B씨와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A씨는 수개월에 걸쳐 B씨를 관리했다. 최근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연 B씨는 자신의 집 앞에 쌓인 폐지 등 쓰레기를 치울 수 있도록 동의했다.    

이처럼 저장강박 의심가구 관리를 담당하는 동 행정복지센터 사례관리 담당자는 설득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장강박 의심가구와의 정기적인 접촉을 통해 라포(공감대)를 형성하고 쓰레기를 치우기까지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라포 형성까지 길게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려 설득 과정이 쉽지는 않다. 겨우 설득해 치운다 해도 얼마 못 가 다시 쓰레기가 쌓인다.

A씨는 "동의라는 산을 못 넘으면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정리를 못한 것으로 된다"면서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일을 안 한 것처럼 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저장강박 의심가구 대청소. 광주 동구청 제공
 

조례는 있지만 실효성 의문…광산구는 조례마저 없어 

광주 남구청이 지난 2021년 2월 광주 5개 자치구 중 처음으로 조례 제정을 통해 저장강박 의심가구 지원에 나섰다. 이후 2021년 동구청, 2022년 서구청 올해 북구청이 뒤이어 조례를 제정했다.

저장강박 의심증상이 있는 주민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정신건강 전문 기관과 연계 지원과 주거환경 개선에 필요한 지원하기 위해서다.

광주 자치구 가운데 광산구청만 유일하게 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고 있다. 조례가 있더라도 실태조사를 진행한 곳은 북구청 뿐이다. 나머지 자치구들은 대부분 인근 주민 신고 등에 의존하고 있다.

조례에는 정신건강 전문기관와 연계 등이 명시돼 있지만 대부분 단순히 쓰레기를 치우는 일회성 지원에 그치고 있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장기적인 대책은 전혀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저장강박 의심가구들은 재발을 막기 위한 심리상담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수적이지만 대부분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 단순 사례 관리만 이뤄지고 있다.

저장강박증 확인 지표는 자치구 의심 사례와 강박증 환자 현황이 전부?

미국정신의학회는 지난 2013년부터 강박증의 한 유형인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을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5%를 저장강박증 환자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저장강박증에 대한 분류가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저장강박 의심가구 현황과 보건복지부의 강박증 진료 현황만이 '저장강박증' 환자 수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지표다.

강박증 연도별 환자수 추이.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캡처


실제로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의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 동안 강박증 환자 현황을 보면 △2021년 3만 6913명△2022년 4만 449명 △2023년 4만 2630명 등 모두 11만 9992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박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저장강박증과 관련한 정확한 통계와 함께 관련 연구 등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선대 상담심리학과 김나래 학과장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자체가 미국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만든 것은 가져다 활용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진단은 가능하지만 연구 등은 아직 충분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면서 "저장강박 장애가 노인의 장애라고 할 수 없고 개인화되고 폐쇄적으로 지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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