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인도인을 위한 車 …1위 도요타 제치고 현지기업 '우뚝'
인도 국민기업 되다
'싸고 작은' 해외차 전략에 맞서
집요한 현지화·R&D 통큰 결단
SUV 크레타 단숨에 국민차로
현대차그룹 점유율 20% 질주
연간 판매 100만대 3년내 돌파
인도·日 합작사 장악한 시장서
지분 100% 현지법인으로 승부
'인도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인도인이 되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현대자동차가 인도를 처음 공략했던 1990년대 중반, '현대(Hyundai)'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재원이 현대에서 왔다고 하면 "혼다요?(What? Honda?)"라고 되물었다.
현대차는 인도 공략을 위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짰다. 브랜드 인지도가 전무한 이 시장에선 오직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인도인이 가장 선호하는 게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당시 인도 내 모든 해외 완성차 기업은 본국에서 팔던 '싸고 작은 차'를 가져다 파는 관행이 있었다. 현대차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인도 소비자를 기존 제품에 꿰맞추지 않았다. 빈 도화지를 펼쳐 현지인이 좋아하는 디자인·기능·사양으로 새 그림을 그렸다. '인도인만을 위한 세상에 없는 신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첫 전략 모델인 '상트로'부터 누적 100만대를 팔아 '인도 국민차'에 등극한 소형 SUV '크레타' 모두 현지화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기아 사장을 지낸 후 퇴임한 박한우 전 현대차 인도법인장은 "현지인에게 '오직 인도 사람을 위한 차'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며 "자국에서 팔던 저렴한 차를 인도에 가져다 판 업체와 크게 구별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차 개발에는 수천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하다. 오너 결단이 필수다. 소형차가 거의 없던 현대차로선 플랫폼부터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힘을 실어줬다. 그의 결단으로 현대차는 2006년 인도 하이데라바드 지역에 해외법인으로선 드물게 현지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임흥수 전 현대차 인도법인장은 "우리나라와 운전석 위치부터 모든 것이 다른 현지 사정을 반영한 신차가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신차는 주재원들이 인도 주요 4개 도시를 돌며 현지인과 똑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면밀한 시장 분석 끝에 탄생했다. 당시 "현대차 직원은 일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까지 회자됐다고 전직 인도 주재원은 전했다.
무더운 날씨를 고려해 30분 만에 60도였던 실내 온도를 23도까지 떨어뜨리는 차, 큰 키에 터번까지 쓴 현지인을 위해 천장을 높인 차,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엔진에 영향이 없는 차, 물 웅덩이를 잘 피하는 차 모두 '인도인 그 자체'가 되지 않는 한 탄생할 수 없었다. 절실한 노력은 달콤한 결과로 돌아왔다. 현대차가 진출하기 전 인도 자동차 시장은 스즈키와 합작한 마루티를 선두로 타타, 마힌드라 등 인도 현지 업체가 90% 이상을 차지하던 시장이었다.
현대차가 인도에 뛰어든 후 판세가 달라졌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의 점유율(20%)은 1위 마루티스즈키(41.3%)의 절반까지 따라붙었다. 같은 기간 세계 1위 도요타의 인도 점유율이 6.4%에 그치는 점과 비교하면 현대차그룹의 인도 돌파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는 3년 내 인도에서 연간 100만대 판매를 돌파할 것이 유력하다. 지난해 현대차는 인도에서 약 60만대, 기아가 25만대의 차를 판매했다. 지난 4월 현대차그룹은 내년까지 인도에서 현대차·기아 합산 총 150만대의 생산능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GM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면서 빠르게 생산능력을 확대해 신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현대차·기아가 단일 국가에서 연간 판매 100만대를 달성하게 되면 한국, 미국, 중국에 이어 네 번째가 될 전망이다.
서보신 전 현대차 인도법인장은 "현대차그룹은 잘 팔린 차종의 생산 가능 대수를 단기간에 늘릴수 있는 독보적인 생산기술을 가졌다"고 말했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빠른 의사결정 구조와 공기(건축에 소요되는 시간)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차가 인도 첫 생산기지인 첸나이 공장을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7개월이다. 첸나이에서 포드가 현대차보다 먼저 착공했지만 현대차의 완공이 훨씬 빨랐다. 1990년대 말 현대차가 캐나다 브로몽 공장을 철수하면서 이곳에서 썼던 여러 대형 장비를 인도로 가져와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인 점도 한몫했다.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든 것도 성장에 힘을 보탰다. 현대차는 일본 스즈키와 달리 인도에 진출할 때 합작사를 세우지 않았다. 한 현대차 고위 임원 출신은 "1990년대 당시 인도는 최근의 중국처럼 외국 기업이 진출할 때 현지 회사와 합작사를 만들도록 강요했다"며 "현대차는 현지에서 만든 차를 수출하고 많은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협상력을 발휘해 지분 100% 회사를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소라 기자 / 문광민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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