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게 날아간 金 미안할거야 상대도 미미야, 잘 싸웠어!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7.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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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유도女 57kg급 값진 銀
위장공격 지도로 반칙敗
석연찮은 주심 판정에
승자도 "유도 바뀌어야"
독립운동가 허석의 5대손
日국적 포기하고 태극마크
"다음번엔 애국가 부를것"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급에 출전한 허미미가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캐나다 크리스타 데구치와의 결승전에서 패배해 아쉬워하고 있다. 파리 이충우 기자

연장전에서도 2분이 훌쩍 지나 두 선수 모두 지친 상황. 수차례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의 다리를 노렸던 허미미(22·경북체육회)가 힘을 짜내 안다리걸기를 시도했다. 데구치는 넘어가지 않았고 심판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한 허미미에게 오히려 '위장 공격'을 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30일(한국시간)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허미미에게 금메달을 앗아간 심판의 애매한 판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허미미와 데구치가 나란히 지도 2개를 받은 상황에서 심판은 허미미가 한 공격이 위장 공격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허미미는 지도 3개가 누적되며 반칙패했다. 유도에서 지도 3개를 받으면 반칙패로 기록된다. 반칙승을 거둔 데구치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잠시 허공을 바라봤고 매트에서 내려와 코치의 축하를 받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

허미미를 허무하게 떨어뜨린 판정에 한국 대표팀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미정 한국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은 "보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지만 (허)미미가 절대 위장 공격을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면서 "미미가 주저앉고 안 일어난 것도 아니고 계속 일어나서 공격했다"고 말했다.

위장 공격은 공격할 의도가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불리한 상황에 놓인 선수가 그것을 피하고자 '방어를 위한 공격'을 했을 때 주어진다.

금메달을 딴 데구치 역시 시상식이 끝난 뒤 기자들이 지도 판정에 대해 질문하자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어려운 질문"이라며 운을 뗀 그는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지도에 대해 할 말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바꿔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위로 경기를 마친 허미미가 30일(한국시간)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급 시상식에 참석해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파리 이충우 기자

정작 금메달을 놓친 허미미는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위장 공격일 줄 몰랐는데 그래도 경기의 일부니까 어쩔 수 없다"며 "금메달을 따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전까지 나가서 정말 행복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허미미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도 데구치와 연장 혈투를 벌여 그를 반칙승으로 물리친 바 있다.

경기를 본 시청자들은 심판의 모호한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를 해설하던 2020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급 은메달리스트 조구함은 "적극적인 건 허미미인데 왜 지도를 주냐"며 분통을 터뜨렸고, 경기 중에는 "데구치가 의도적으로 오른쪽 깃을 잡지 못하게 막고 있다. 이는 반칙이고 데구치에게 지도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기술은 온데간데없고 심판 눈치만 봐야 하는 경기가 되어간다" 등 누리꾼들의 날 선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유도 팬들은 이전 올림픽에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딴 이원희(2004 아테네올림픽)와 최민호(2008 베이징올림픽)의 영상을 보며 "이런 게 진짜 유도"라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허미미의 은메달은 값지다. 한국 여자 유도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건 2016년 리우올림픽 정보경(48㎏급) 이후 8년 만이다. 허미미의 은메달은 한국 유도가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획득한 메달이기도 하다. 앞서 이틀간 치러진 남녀 4개 체급에서는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허미미는 "이제부터는 경기가 남은 언니·오빠들을 열심히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미는 2002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다. 일본에서 자랐지만 2021년 별세한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2022년 한국 국가대표가 됐다. 허미미는 "할머니께서 한국에서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하셨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믿고 따르며 살았으니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올해 포르투갈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 5월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1995년 정성숙(61㎏급) 조민선(66㎏급) 이후 29년 만에 한국 여자 유도에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안겼다.

허미미는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일본 기자들이 한국행을 택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 질문하자 "한국을 대표해 (올림픽에서) 경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대표팀 선수가 돼)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많은 선수와 같이 겨룰 수 있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미미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허석의 5대손이기도 하다. 동생 허미오 역시 청소년 유도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중국적자였던 허미미는 작년 12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됐다. 시상대 꼭대기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위해 가사를 미리 외웠다는 허미미는 "(금메달을 놓쳐 애국가를) 못 불러서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부르고 싶다"며 4년 뒤를 기약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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