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돼가는 ‘깔딱고개’의 아이들
여름방학이다. 때마침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수신지 글·그림, 귤프레스 펴냄) 4권도 나왔다. 입시 준비가 아니더라도 어른이 돼가는 ‘깔딱고개’에서 고등학생 아이들은 당황하고 헤매다가 엎어져 혼자 훌쩍거린다.
반장이 되어 부담스러워하는 우등생 아랑이, 노는 것도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고 싶어서 촘촘하게 전략을 짜는 연두, 성실하게 공부하지만 성적만큼은 나오지 않아 속상한 모범생 하은이. ‘대학 가면 다 좋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싶은, 대체로 발랄한 아이들은 아슬아슬한 우정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3권까지 점점 증폭돼가는 갈등 속에 놓여 있었고 이번에도 열심히 성장한다.
경주로 떠난 수학여행 마지막 날 억지로 장기자랑 무대에 서게 된 아랑이는 뭐든 열심히 하려는 성격 때문에 다른 반 남자아이 승호와 2인무까지 추는 스캔들을 만들어 1등상을 받는다. 자기도 모르게 적극적인 퍼포먼스를 벌인 아랑이는 무대에서 내려와서 창피해하지만 엎어진 물이었다. 게다가 승호는 절친 연두와 ‘썸’ 타는 사이!
아이들은 경주에서 길을 잃는다. 전교 1등에다 반장까지 하는 아랑이에 대한 질투가 끓어오르는 연두, 윤택한 가정에서 자란 연두에 견줘 자신의 집안 형편이 못내 아쉬운 아랑이, 연두와 아랑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하은이 세 사람의 미묘한 신경전과 갈등도 더욱 고조된다. 단지 셋이 재미있게 놀고 싶었던 수학여행에 대한 하은이의 꿈이 좌절된 순간,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은 성장통을 견디는 치료제가 되기를 바랄 수밖에.
<며느라기> <곤> 등의 작품에서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정확하게 그려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수신지 작가는 이번에도 등장인물을 진부하게 재현하지 않고 아이들이 처한 중층적 상황과 심경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자기 생각은 들키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은 한눈에 꿰뚫는 ‘통찰력 갑’ 아름이, 연두의 남친이 되고 싶은 범생이 승호, 꼰대와 탈꼰대 사이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담임쌤까지 캐릭터는 점점 다채로워지고 인물들의 내면도 두터워진다.
독자들은 믿었다. 위태롭지만 아이들은 끝내 행복해질 것이고 삼총사의 관계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과 우정은 원래도 안전하지 않은 것. 어른이 된다고, 성장한다고 해서 무뎌지지도 않는 것. 작가의 건필과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주고픈 마음이 더욱 강해지는 까닭이다. 아랑이 또래의 아이들, 그 또래를 지나온 모든 어른을 응원하는 책. 1만5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들풀의 구원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8천원
상실과 가난으로 무너진 삶과 들풀 이야기를 교직하며 써내려간 한 영국 시인의 에세이. 정원의 위로를 가르쳐준 친언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몇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은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다. 저자는 부서진 땅에 들풀을 심고 가꾸며 애도와 희망을 이어간다. 번역가 김명남의 사려 깊은 작업이 책에 빛을 더한다.
단식 존엄사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펴냄, 1만6800원
대만 재활학과 의사인 큰딸이 어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겪은 이야기를 적었다. 단식을 통한 존엄사를 택한 어머니와 가족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눠가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생전 장례식’을 치렀고, 단식 21일째 되는 날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떠났다. 웰다잉, 존엄사, 환자의 ‘사망 자결권’에 관한 논쟁거리를 제시한다.
책 읽다 절교할 뻔
구선아·박훌륭 지음, 그래도봄 펴냄, 1만8천원
‘책방연희’를 운영 중인 구선아 작가와 ‘아직독립못한책방’ 운영자 박훌륭 작가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책을 권한다. 취향이 다른 두 책방지기가 소개하는 소설, 에세이,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등 총 45권의 책과 함께 책방 운영자로서 어떻게 독자에게 책이 가닿을지 고민하며 행사를 기획하는 심정 등을 살펴보는 것도 독서의 팁.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
집현네트워크·윤신영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3만원
국내 과학자들이 모인 집현네트워크가 기후위기 시대의 지식을 담았다. 갑작스레 ‘비 폭탄’이 쏟아지는 이유, 조류독감이 무서운 까닭, 다음 팬데믹이 우리를 찾아올지 등의 질문에 대해 한국 상황을 중심으로 답한다. 기후위기와 감염병을 연결해 기후재난과 보건재난이라는 두 큰 재난을 함께 연구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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