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뭉개더니 …'대북요원 명단' 빼돌린 군무원 구속

유출 알고도 부실 대응한 軍, 본지 보도에 즉각 영장발부
지난달부터 수사 시작됐지만
용의자는 보란듯이 출퇴근
일각선 "내부서 덮으려 했나"
향후 국가보안법 적용 촉각
공범 존재할 가능성도 높아
"해킹은 아니다" 국회 보고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이 30일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 등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군무원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보사 해외 공작 부서 소속인 A씨는 신분을 위장하고 첩보 활동을 하는 첩보요원의 신상 및 개인 정보와 함께 다수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수사당국은 유출된 기밀이 북한으로 향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에게서 기밀을 넘겨받은 조선족 중국 동포가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첩보요원 신상 및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는 A씨를 지난달 입건해 압수수색까지 했다.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A씨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고, A씨는 정보사에 출퇴근하면서 수사를 받았다.

해당 군무원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29일 방첩사는 군사기밀 누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군 사법기관은 즉시 영장 청구와 발부에 나섰다. A씨로부터 조선족에게 넘어간 첩보요원 파일이 북한 정보기관 네트워크에서 발견됐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공개 수사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군은 해킹으로 대북 정보요원 명단이 유출된 것은 아니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정보사와 방첩사의 보고를 받은 뒤 브리핑을 통해 "기밀 유출 의도는 수사 중이지만 확실한 것은 해킹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형법부터 군사기밀보호법, 국가보안법, 내란 유치 죄, 외환죄 등을 방첩사가 심층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보사 내부적으로 해결하려다가 수사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힘들게 양성한 첩보요원들 신상이 적국에 넘어간 위중한 상황에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국가안보 이슈에 대해 군 내부에서 수사와 엄단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수사 쟁점은 A씨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느냐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 때는 A씨와 북한 간 연계성을 명확하게 확인하지 못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인사 업무 담당자나 인사 관리자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수사는 그가 첩보요원 명단을 보유한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 관계자는 "A씨는 컴퓨터 해킹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보사 첩보요원들 신상 정보가 그의 개인 노트북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개인용 노트북 컴퓨터에 첩보요원 신상 정보를 일일이 입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처음부터 조선족에게 전달할 의도를 가지고 작성한 혐의(국가보안법이나 형법의 간첩죄)가 제기될 수 있다.

A씨 외에 또 다른 피의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정보사 내부에서는 A씨 혼자 빼돌릴 수 있는 정보량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개인 노트북에 이러한 1급 기밀자료가 대량 들어간 것부터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군 관계자는 "사실상 정보사 첩보요원 신상 정보가 전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군무원이 혼자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내부에서는 조력자가 있거나 함께 도모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일단 신상이 노출된 정보원을 다시 활용하기는 불가능해 정보사의 해외 정보망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사는 급한 대로 몇몇 주요 거점에서 활동할 대체 인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권선우 기자 / 박윤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