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표현 빠진 사도광산 전시…일본, 과거 군함도 때도 강제동원 부인

정희완 기자 2024. 7. 3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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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15년 군함도 때 강제성 확보”
하지만 당시 일본은 “강제노동 아냐” 부인
사도광산 전시공간에도 기존 인식 투영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한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설명을 전시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외교부 제공

정부가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조건으로 합의한 일본의 후속 조치물에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빠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2015년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강제노동’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번엔 강제성을 실제 자료로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당시 하루도 안 돼 강제노동 표현이 강제동원을 인정한 건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또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전시공간에 일본 측이 작성한 객관적 사료만 나열된 점도 문제로 꼽힌다.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의 주장대로만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도광산 등재 전 한·일 간 협상을 두고 “2015년 (일본 측의) 발언문을 통해 강제성이 확보된 만큼, 이번엔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해 (강제성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강제동원 등 강제성 표현을 일본에 요구했는지를 놓고는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지난 27일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키로 결정했다. 한국을 비롯한 위원국 전원이 동의했다. 한국은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물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하고, 추도식을 매년 개최키로 합의함에 따라 등재에 찬성했다.

그러나 설치를 마친 전시관에서 ‘강제’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또 세계유산위 회의에서 일본 측은 강제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도 하지 않았다. 일본 측은 “세계유산위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할 것”이라고만 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언급한 ‘세계유산위 모든 결정과 약속’에는 2015년 7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측 수석대표의 발언도 포함된다고 했다. 당시 일본 측 수석대표는 “1940년대 일본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 하에 강요된 노동(forced to work)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등재 결정문에도 게재됐다. 외교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한국인들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일본으로 하여금 사실상 최초로 언급하게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일본이 과거에 이미 강제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번 사도광산 협상 때는 강제성을 자료를 통해 가시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게 외교부의 입장이다. 앞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표현을 갖고 협상력을 허비하기보다는 그건(강제노동 인정) 이미 우리가 챙겨놓은 것이기에 다시 한번 컨펌(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 정부가 군함도 등재 때 자국 대사의 발언을 한국과 달리 해석했다는 점이다.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현 총리)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2021년 4월 각의(국무회의) 결정에서 “국민징용령에 의한 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해 ‘강제연행’, ‘강제노동’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국내법에 근거한 적법한 ‘징용’이지, 불법적인 강제동원은 아니라는 논리다.

일본의 이런 인식이 이번 사도광산 전시공간에도 그대로 투영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시물에는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지칭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 표현은 한국 대법원이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주장을 한국이 용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공간에 있는 “1938년 4월 공포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징용령으로 모집, 관 알선, 징용이 한반도에 도입됐다”는 문장도 강제동원이 합법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소한 강제성의 맥락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객관적 사료와 함께 피해자의 증언 등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은 “조선총독부가 모집, 알선했다는 내용은 진전된 부분이긴 하다”면서도 “향토박물관에 전시된 사료들은 일본 경찰 등 제국의 언어로 쓰인 것으로, 특정 내용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식으로 읽힐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은 이어 “강제노동의 실질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와 그 유족의 증언이 반드시 함께 전시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피해자 증언을 전시공간에 넣으려 시도했으나 일본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해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저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라고 한 발언도 소개됐다. 그러나 이 발언은 “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며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했고, 강제성 표현도 담겨 있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일이 협의해 전시 내용을 구성할 때, 우리는 강제성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많은 내용을 요구했다”라며 “일본이 최종적으로 수용한 게 현재 전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 합의는 막판까지도 불투명했고, 우리가 끝까지 여러 가지를 요구해 협상은 막판에 타결됐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 측에 추가 조치를 요구할지 여부를 두고 “한·일 간 지속적으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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