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과거, 현재화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
분홍 색깔 손바닥 크기(가로 7㎝, 세로 12㎝) 카드 안에는 옛 전남도청 분수대 그림과 함께 ‘반드시 이기고 돌아온다’ ‘평화로운 날들이 돌아온다’라고 쓰여 있다. 시계탑과 계엄군 헬기 사격 흔적을 간직한 전일빌딩 그림에는 ‘갑자기 세상이 바뀐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광주를 내려다보는 무등산 입석대 그림에는 ‘정의는 정의 편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법이다’ 문구가 담겨 있다.
다른 카드에는 수박을 쫓는 고양이, 생맥주와 함께 놓인 통닭, 검 대신 방망이를 든 장군 등 다양한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들어가 있다. 모두 5·18민주화운동과 광주를 상징하는 그림과 문구들이다.
“고양이 그림에는 광주 출신 조선 전기 문신 박상(1474~1530)이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지킨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통닭은 광주를 대표하는 양동시장 통닭 가게들을 표현했죠. 광주는 또 야구가 유명하니까 임진왜란 때 활약한 정충신(1576~1636) 장군에게 야구방망이를 쥐여줘 봤어요.”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관광기업지원센터에서 만난 송재영(41) 작가는 최근 직접 개발한 타로카드 ‘물들’을 보여주며 광주의 숨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냈다.
타로 그림을 광주 상징물로 대체
한글 문구 넣어 누구나 해석 가능
전남도청 ‘반드시 이기고 돌아온다’
전일빌딩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도 담아
송 작가는 최근 청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타로카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제작했다. 무거운 분위기의 기존 타로와 달리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5·18, 우일선 선교사 사택, 충장축제, 무등산 입석대 등 광주를 상징하는 역사와 장소, 문화, 스포츠 등을 카드 78장에 담아냈다. 각 장마다 광주 상징 그림 1개과 함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등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한글 문구 2개씩 넣어 누구나 쉽게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타로카드의 필수 상징인 동전, 막대, 칼, 컵은 각각 무등산 수박, 야구방망이, 양궁 화살, 유명 제과점의 과자로 대체했다. 타로카드 이름은 광주의 옛 이름인 ‘물들’(물이 많은 들)에서 차용했다.
송 작가가 타로카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송 작가는 “2015년부터 구식 타자기를 들고 광주 곳곳에서 시민 사연을 글로 써주는 ‘유랑 기억보관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를 고민했다”며 “2019년 네이버파트너스퀘어 광주 입주작가로 선정되며 그림작가와 협업으로 첫 카드를 만들었고 필명 ‘타라재이’에서 따와 타라카드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2022년에는 첫 번째 카드의 모호한 문장을 개선한 2세대 카드를 선보였다.
송 작가는 “예상보다 많은 분이 1세대와 2세대 타라카드를 좋아해 주셨고 타 지역 출신으로 보고 느낀 광주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고 이번 3세대 카드 제작 배경을 밝혔다.
“광주에서 소설가, 문화기획자 등으로 활동하며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어요. 광주는 어머니처럼 품어주는 무등산과 어디든 즐비한 맛집, 다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제 마음속에 비친 두 번째 고향 광주의 매력을 타로카드에 담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방울 명창, 김덕령·정충신 장군, 양림동 펭귄마을 등 광주를 모르는 이용자를 위해 타로카드 그림에 담긴 26개 이야기는 전자책으로 펴내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외국인들을 위해 영문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6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30일 기준 312명이 사전예약했다.
서울 출신인 송 작가는 대학 1학년 때 5·18 답사를 계기로 광주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서울에서 국어·논술 강사로 일하다 소설가 꿈을 안고 2012년 광주에 터를 잡았다. 2014년 온라인 독립잡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방해’를 발행해 광주지역 예술인들을 소개했고 2015년에는 옛 전남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살았던 광주 서구 달동네 발산마을의 공유공간 ‘뽕뽕브릿지’ 개관전시에 참여했다. 2017년 충남 홍성군 이응노의 집 1기 입주작가에 선정돼 지역 여성들의 인생과 요리 이야기를 담은 ‘국이 식는다’를 출간했다. 또 2020년 광주시립미술관의 5·18 40주년 기획전시 ‘별이 된 사람들’의 영상을 기획했고 2023년 11월에는 6·25전쟁 너릿재 학살에서 살아남은 주대채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단편소설 ‘소년에서 먼빛까지’를 선보였다.
“제2고향 광주의 매력 알리고 싶어
광주 소재 웹툰과 드라마도 집필”
송 작가는 지역을 소재로 본업인 이야기꾼에 충실해지고 싶다고 했다. 현재 일제강점기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와 일본 사회인 야구단의 시합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룬 웹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차세대 열전 문학 8인으로 선정되며 집필한 단편소설 ‘붉은 공’이 원작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이야기를 동시대 감각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작가로서 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광주를 소재로 한 드라마 극본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재미있는 광주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정신병원 ‘다인실’ 손발 묶여 맞아죽은 다음날, 다른 환자 또 묶어놔
- 1천년 ‘전라도’ 이름 사라질 판…‘전남’특별자치도 명칭 졸속 추진
- 2단 찜통에 갇힌 한반도, 35도 넘는 폭염이 온다
- 105㎝ 도검으로 아파트 이웃 살해…올해 1월 소지 허가받아
- 통신사 직원 가족이 쓴다는 ‘월 1000원’ 요금제 [쩐화위복]
- ‘날치기 연임’ 류희림 방심위원장, 의결 강행 의지…정당성 흔들
- 돼지떼 방북 추진했던 ‘삼겹살 원조’ 청주…궁금하면 서문시장으로
- 5박6일 걸린 방송4법 국회 통과…윤, 또 거부 뜻에 폐기 수순
- 한국정치 상징 ‘DJ 사저’ 100억에 제빵학원 쪽 매각…동교동계 ‘한탄’
- ‘묶어둔 환자 사망’ 정신병원장은 양재웅…“사과 없더니 언론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