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입법독주→거부권’ 반복되는 정치, ‘불신’ 커지는 국민
尹과 양당 지지율은 정체, 무당층은 증가…“누구 하나 ‘대타협’ 말하지 않아”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22대 국회 개원 후에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승자 없는' 정쟁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거대야권의 '방송4법' 강행 처리에 집권여당은 '5박 6일' 100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로, 정부는 16번째 대통령 재의요구(거부)권 행사 예고로 맞대응하면서다. 여·야·정(여당·야당·정부) 모두 협치도 실익도 없이 일방통행만 하면서 국민들의 정치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무당층' 비율도 20%를 넘을 만큼 정치 불신이 커지는 분위기다.
'타협' 없는 여야…尹은 '이승만 거부권' 기록까지 넘본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30일까지 5박6일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설치 및 운영법,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이어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까지 통과시키며 '방송4법' 추진 과업을 완수했다. 해당 법안들은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변경하는 내용, 공영방송 이사 숫자를 대폭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방송 학회와 관련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넋놓고 있진 않았다. 이들은 방송4법을 '좌파 방송 영구 장악법'으로 칭하며, 지난 25일부터 5박6일간 하나의 법안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대응에 나섰다. 해당 기간 국회 본회의장은 '본회의 법안 상정→여당의 필리버스터 신청 및 진행→24시간 후 야당 주도로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 제출 및 통과→여당 퇴장 속 야당의 법안 단독 표결'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협상은커녕 상대에 대한 비판만 일삼았다. 국민의힘 출신의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대통령실도 이날 최종 통과된 방송4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강력 시사하며 집권여당과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미 폐기된 법안에 방송통신위원회 관련 법 개정안까지 포함해 강행 처리된 상태"라며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변경과 관련한 제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여야가 합의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법안 개수는 곧 20건을 기록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지난해 6건(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이고 올해는 9건(김건희·대장동 쌍특검법, 이태원참사특별법, 채해병특검법 등)에 달한다. 이미 민주화 이후 각 정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기록(▲노태우 정부 7건 ▲노무현 정부 6건 ▲이명박 정부 1건 ▲박근혜 정부 2건)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이번 방송4법은 물론, 야권에서 다음 달 본회의를 통해 처리하려 하는 '민생회복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에도 퇴짜를 놓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경우 일각에선 헌정 초기 혼란스러웠던 이승만 정권에서 행사한 45건 기록마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이미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이달 초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미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루즈벨트 대통령도 660회의 거부권을 임기 중 행사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탄핵·거부권 도돌이표 반복되는 사이, 한국만 정체될 것"
정치권에서도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강대강 대치' 국면이 풀리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미 범야권은 192석의 입법권 힘을 가진 상황에서 지난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 탄핵'을 슬로건으로 공세를 퍼부어왔다. 여기에 입법권 정점에 있는 이재명 전 대표와 행정권 수장인 대통령 영부인의 사법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양측에선 주도권을 절대 뺏길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거대양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 중인 상태다. 지난 2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당 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은 35%, 더불어민주당은 27%를 기록했다. 거대양당 모두 최근 전당대회라는 플러스 이슈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40%의 지지율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23%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입법기관 대신 행정기관을 신뢰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도 여전히 20~30%대 박스권에 멈춰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총선 직후 세 달 넘게 30% 벽을 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8%에 머물러있다. (유권자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 300명 중 누구 하나라도 '강대강 상황에 대해 문제가 있다',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 '대타협을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라며 "의원들이 당론이나 당대표 또는 미래 권력의 눈치에서 벗어나서 국가의 미래와 현안 타개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탄핵과 대통령 거부권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사이, 경제위기는 다가오고 우리(한국)만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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