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0억 짬짜미가 만든 `순살 아파트`

권준영 2024. 7. 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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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LH감리업체·심사위원 기소
업체별 상징표식 정해 평가통과
직접 현금제공 등 범행 주도면밀
감리업체들이 심사위원 포섭을 위해 사용한 금품 사진. <디지털타임스 DB, 서울중앙지검 제공>
<연합뉴스>

아파트와 병원 등 공공건물의 안전 시공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업체가 짬짜미로 5700억원대 입찰 물량을 나눠 먹고 심사위원들에게 뒷돈을 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지난해 철근 누락으로 인한 지하주차장 붕괴사태를 빚은 인천 검단 자이 아파트, 2022년 붕괴 사고가 난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의 감리업체도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입찰 제도의 허점을 노린 부패로 혈세가 낭비되고 안전관리 역시 부실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김용식)는 1년 가까이 수사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조달청의 '건설사업 관리용역(감리)' 담합 의혹 사건 수사를 30일 마무리했다. 중앙지검은 LH 감리 담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7명을 포함해 68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기소하고, 6억5000만원 상당의 뇌물액을 추징보전 조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에게 "담합 행위는 자유로운 경쟁과 정당한 보상이라는 경쟁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기업 활동을 위축하는 심각한 범죄"라면서 "이런 범죄 행위 근절하는 검찰의 형사법 집행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17개 감리업체와 소속 임원 19명은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5000억원에 이르는 LH 용역 79건과 740억원 상당의 조달청 발주 용역 15건에서 낙찰자를 미리 정하고 서로 들러리를 서주는 등의 방식으로 담합(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LH가 공지하는 연간 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 물량을 나눴는데, 2020년에는 전체 물량의 약 70%를 담합업체가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금품수수 사건 관련해선 수수자 18명과 공여자 20명 총 38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감리 입찰 심사위원들이 주요 감리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약속된 점수를 준 혐의다.

이들의 범행은 치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감리업체들은 LH 전관을 채용하고 학연과 근무인연을 이용해 담합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LH에서 공공기관이나 아파트의 감리 사업의 심사위원이 선정되면 이들에게 접근해 금품을 제공했다. 심지어 감리업체들은 업체별로 '불만제로', '상상e상' 등 상징 표식을 정했다. 블라인드 평가 과정에서 로비를 받은 심사위원들이 업체의 제안서를 알아볼 수 있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감리업체들이 LH 전관들로 이뤄진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군사작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위원들에게 고액의 현금을 '인사비' 명목으로 지급해 공정이 생명인 공공입찰 심사 점수를 흥정했다"고 비판했다.여러 업체로부터 동시에 돈을 받는 이른바 '양손잡이'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내에게 "이제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앞으로 (정년까지)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고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요", "여행 가려면 돈 벌어야 해요" 등의 문자를 보내거나, 발주청에서 받은 자문 업무를 감리업체 직원에게 대신하게 한 심사위원 사례 등도 적발됐다.

이들 사이에선 '1등 점수'를 주면 3000만원, 경쟁 업체에 '최하점 점수'를 주면 2000만원을 주는 식의 시세도 형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증거인멸이 상대적으로 쉬운 텔레그램을 이용해 소통했다.

금품은 직접 만나 현금으로만 제공하고 로비 금액을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끼리 분담한 '정산표' 등은 즉시 폐기하는 용의주도한 범행을 펼쳤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담합에 참여한 감리업체들이 2022년 1월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나 지난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사고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이달 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의 미비점을 유관기관과 공유해 개선 방안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심사낙찰제도 대상 용역을 재검토하고, 심사위원 선정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고 명단을 비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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