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전부 내놓겠다는 구영배…큐텐 교환사채 추가 발행은?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이른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자신이 큐텐 지분 38%를 갖고 있다며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한 만큼,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보유한 큐텐 지분을 직접 매각하는 건 현재로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 지분을 사줄 곳이 있겠냐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과거 티몬 등을 인수했을 때처럼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바꿔준다는 전제로 큐텐 교환사채(EB)를 발행해 판매하는 게 비교적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 마저도 실현되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30일 구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이번 사태의 해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룹이 갖고 있는 부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원인데 다 투입할 수 있을 진 (미지수)”라며 “큐텐 지분 38%를 갖고 있다.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고 답했다.
현재 구 대표는 싱가포르 소재 법인인 큐텐의 지분 38%를 보유하고 있다. 구 대표는 큐텐 자회사이자 그룹의 핵심인 큐익스프레스 지분도 직접 들고 있다. 큐익스프레스의 최대주주는 큐텐(65.9%), 2대주주는 구 대표(29.4%)이다.
전날 구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큐텐은 티몬·위메프에 피해 복구용 자금 지원을 하고자 긴급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큐텐 보유 해외 자금의 유입과 큐텐 자산·지분 처분 및 담보를 통한 신규 자금 유입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날 오후 티몬과 위메프는 서울회생법원에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 및 법인 회생을 신청했는데, 이는 회생 절차 개시를 미루면서 지분을 유동화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의 명령에 따라 보유 지분 3분의 2 이상을 무상 감자해야 할 가능성이 크지만, ARS에 돌입하면 최장 3개월 간 회생 개시가 유예돼 그 전에 자금 조달을 시도해볼 기회가 생긴다.
큐텐 내부 사정에 정통한 IB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구 대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게 증명된 상황에 검찰까지 나서 수사를 시작했다”며 “유동성이 넘쳐나서 유통 플랫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알리바바 조차도 큐텐 딜에는 안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큐텐의 교환사채(EB)를 추가로 발행하는 것이다. 거액의 투자금이 묶일 위기에 놓인 기존 투자자들이나 신규 투자자가 EB를 사줄 가능성이 업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EB란 발행사가 갖고 있는 증권과 교환할 권리가 딸려있는 채권을 뜻한다. 돈으로 상환 받거나 그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다.
즉, 큐텐이 EB를 발행해 제3자에게 팔고 향후 그 EB를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맞바꿀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룹 내에서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큐익스프레스를 담보로 걸고 돈을 끌어오는 게 지금으로선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지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는 지금까지 큐익스프레스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계열사의 문어발 확장을 감행하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큐익스프레스에 대한 지배력을 더 약화하고 싶진 않겠지만, 지금은 워낙 심각한 상황”이라며 “자금을 끌어오면서 큐익스프레스도 살리는 최선의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큐텐의 EB 발행은 앞서 여러 재무적투자자(FI)들이 택했던 방식이다. 2021년 코스톤아시아와 캑터스PE가 각각 300억원, 500억원을 투자해 규텐이 발행한 EB와 CB를 인수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앵커에쿼티파트너스, PS얼라이언스 등도 티몬을 매각하며 큐텐 지분과 EB를 받았다. 교환사채 발행은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달리 신주 발행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주주 결의 없이 이사회 결의 만으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큐텐의 EB 추가 발행 역시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큐텐은 싱가포르 법인이어서 한국 상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해외 법인들은 이 같은 조항을 정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 상법과 회사 정관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큐텐 이사회가 EB의 추가 발행에 동의해줄 지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큐텐의 투자자나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큐익스프레스 지분이 가장 중요한데, 그 지분과 관련된 통제 장치를 만들지도 않고 돈을 넣었을 리가 없다”며 “현재로선 큐익스프레스가 EB를 상환해줄 돈도 없는 만큼, 신규 투자자가 들어올 유인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큐익스프레스가 싱가포르기업청(ACRA)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2022년 말 3249억원의 유동부채를 안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현금성 자산 166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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